정부 고위 당국자가 마침내 “북한의 정권교체”를 들먹였다. <동아일보>기자에게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그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로 가려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단다.같은 날 조간신문들은 또 다른 ‘고위당국자’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 당국자는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며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북의 ‘정권교체’ 들먹이는 고위당국자문제의 두 발언을 한 ‘고위 당국자’가 같은 인물이길 바란다. 철부지 다름없는 고위당국자가 이명박 정부에 한 명이라도 줄어들기를 기대해서다.하지만 문제는 철없는 고위당국자 수준을 넘어선다. 미국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라. 2010년 7월25일 일요일에 한국과 미국은 대대적으로 합동군사훈련에 들어갔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를 마친 뒤 미국은 강도 높은 대북 금융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은 “북한 지도부와 자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사뭇 당당하게 밝혔다. 이명박 정부도 신바람이 난 듯 “특정 계좌에 대한 정밀타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지금 이 순간 동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미연합 훈련에는 두 나라의 육해공군이 출동한다. 10만t급 미 항공모함은 물론, 최첨단 전폭기와 전투기들이 가세한다. “동해 전역”에서 훈련한다는 말은 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작전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해상자위대 고위 장교들도 참가했다.일본 자위대도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어떤가. 과연 그래도 좋은가. 자위대까지 끌어들이는 훈련을 우리 국민은 동의했는가.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볼 때다. 이미 북의 외무성 당국자는 “많은 공격무기를 장착한 조지 워싱턴호(항공모함)가 참가한 이상 한미 연합훈련은 더 이상 방어훈련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군사조치에 대해 물리적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실제로 북의 국방위원회는 성명에서 “조선인민군과 인민은 미 제국주의자들과 남한 꼭두각시가 계획적으로 상황을 전쟁 직전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응해, 핵 억지력 아래에서 필요시 언제라도 우리만의 스타일로 보복 성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북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잇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북한과의 설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차갑게 비아냥거렸다.명토박아둔다. 미국은 그 따위로 냉소할 수도 있다. 미국 국방장관이 “(북의) 도발이 있을 수 있다”거나, 미국 국가정보국(DNI) 신임 국장이 “북한이 한국에 직접 공격을 가하는 위험하고도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을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그들에겐 모든 게 ‘바다 건너 불’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 국민 개개인―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를 포함한 민간인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강도 높은 한미합동훈련과 ‘정밀타격 금융제재’가 살천스레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할 때, 과연 어느 나라가 손 놓고 있겠는가.군사훈련 벌이며 남아도는 쌀은 가축사료로 쓴다?더구나 이명박 정권은 남쪽에 남아도는 쌀을 북쪽에 보내기를 거부하며 창고에 썩어가는 쌀은 가축용 사료로 쓰겠다고 언죽번죽 나섰다.보수나 진보를 떠나, 좌와 우를 떠나 과연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어디까지 몰고 갈 셈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때가 되었다. 갈수록 경직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결주의 정책이 ‘천안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극을 불러올 가능성을, 또 그것이 한국 경제에 줄 치명타를 있는 그대로 판단할 때다.미국의 ‘힘’이 강력하지만 그래도 대안은 분명히 있다. 간명하다. 쌀부터 보내라. 대화에 나서라. 천안함도, 핵무기도, 만나서 풀어가라. 이미 북은 만나자고 제안하지 않았던가.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