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키기 어렵게 된 신자유주의 쇠퇴

By | 2010-03-25T17:01:43+00:00 2010.03.25.|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몇 가지 사회적 변화 조짐이 최근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미국에서 100년 만에 ‘국민 건강보험 개혁안’이 통과된 것이다. 지난 23일 법안에 서명을 하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세기에 걸친 도전과 1년여의 토론, 모든 표결을 마친 끝에 건강보험 개혁이 드디어 미국에서 법률이 됐다”면서 “미국의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다”고 선언했다.더 중요한 또 하나의 조짐은 일본에서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19일 내각회의에서 파견직 노동자의 제조업 고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뼈대로 한 노동자파견법 개정안을 의결하는 한편, 일본 우정의 비정규직 20만4천명 가운데 10만명을 3~4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이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힘입어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자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의 붕괴를 주장했던 목소리들이 잦아들고 반대로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돌아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회복과 무관하게 내부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던 핵심적 기제들이 이미 생명력을 현저하게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달리 해석할 수 있지만 ‘경제의 금융화’·‘노동 유연화’·‘사회서비스의 시장화’ 정도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축을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핵심 지탱 축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완만한 것이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 성장동력이었던 금융에서 ‘자유화’라는 추세가 꺾이고 ‘규제’의 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 검토되고 있는 ‘금융위기 책임세’나 유럽의 ‘토빈세 도입’ 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규제와 책임·과세의 방향을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다.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대표했던 노동 유연화 체제도 서서히 방향을 선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폭증하고 악화된 고용이 좀처럼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동 유연화 체제를 다시 개혁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파견직과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노동 유연화를 확대해 온 일본이 유연화 규제에 착수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경제위기 이전에 12%를 넘나들었던 독일의 실업률이 경제위기 국면에서 폭증하지 않고 오히려 8% 수준으로 안정되고 있는 사례도 세계의 주목거리다. 미국의 실업률이 경제위기 이전의 4% 수준에서 현재 10%에 육박하고 있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독일의 실업률 감소는 노동 유연화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효과였다.독일의 노동시간단축제도는 전체 또는 일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일정기간(최대 24개월) 동안 단축시키면서 일자리를 유지시키는 것인데, 만약 노동시간단축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실업자가 150만명 이상 더 늘었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이자 우리 정부가 지금 추진 중에 있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추세는 어떤가. 미국 금융회사들인 보험업계의 격렬한 반발로 상당히 후퇴하기는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건강보험 개혁안은 기본적으로 사회서비스의 시장화가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공적 체계 구축’이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경제위기가 외형적으로는 급속히 회복국면으로 반전됐고 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지탱해 왔던 핵심적 기제들이 다른 정책들로 추세적으로 교체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금융 자유화는 금융 규제로, 노동 유연화는 유연화에 대한 재규제로, 그리고 사회서비스 시장화는 공적 사회서비스의 재구축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미국·일본·독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한국사회에서도 ‘친환경 무상급식’의 열풍이 불고 있는 중이다. 무상급식은 일부 계층에 대한 시혜적이고 잔여주의 복지라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전체 국민에게 국가가 제공해야 할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모든 국민에게 고용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궤를 같이한다. 금융 자유화에 대한 규제, 노동 유연화에 대한 재개혁, 그리고 공적 사회서비스체제의 확립은 향후 신자유주의를 뛰어넘어 우리사회의 새로운 활로를 여는 사회개혁 과제로서 점점 더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 2010년 3월18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2 개 댓글

  1. portoce 2010년 3월 26일 at 10:57 오전 - Reply

    까짓거 우리도 공공경제론이나 그런 철학적인 흐름을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프랑스의 공공행정론같은 오래된 가치에 우리만의 특색을 넣은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제역사책들을 보면 일본까진 나와도 한국은 기술된게 없는게 너무 많습니다.
    받아들이기만했지 한국에선 이상하게 변질되는데, 사실상 아이엠에프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결국 이 정권들어서 초대형 모순이 모두 드러난 형국입니다.

  2. hsuji2 2010년 3월 31일 at 9:45 오후 - Reply

    갈 데까지 갔나요? 아직도 더 코너로 몰려야 할까요? 멀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겠지요. 새사연의 끝없는 문제제기와 그것을 널리 전파하는 목소리들이 더 커지고 있음에 희망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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