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저축이 늘었지만 가계는 부채가 늘었다.” 한 경제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한국경제라고 하는 같은 울타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업과 가계라고 하는 경제주체들 사이에 극명하게 엇갈린 현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2008년부터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는 사실 금융회사와 기업의 부실, 즉 부채 때문이었다. 주요 투자은행의 파산에 이은 세계 1위의 금융회사 씨티은행의 파산과 세계 1위의 자동차기업 GM의 파산이 이를 잘 보여 준다.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2008년 10월부터 한국에 전이된 금융위기가 은행들의 과도한 단기 외화차입으로부터 시작된 사례가 그것이다. 당연히 위기수습 대책은 은행에 대한 정부의 구제금융과 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연결됐다.그런데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2010년 3월 현재 은행과 기업들은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반면, 국가와 가계는 심각한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2009년 한국의 은행들 잠정순이익은 총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2월 결산법인들의 전체 이익규모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들의 배당금액이 2008년에 비해 15%나 늘어난 8조6천억원이 될 것이라는 발표를 보건데 유력 상장기업의 이익도 상당히 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덕분에 이들 기업들이 은행에 예금한 저축은 1년 동안 34조원이 늘어나 2000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인 23%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계는 어떤가. 우리 가계의 2009년 실질소득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1.3% 감소했다.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도시의 가계의 실질소득은 3.1%나 줄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주식투자와 같은 위험성이 높은 투자보다는 저축을 선호하는 경향 탓으로 가계의 저축도 10% 정도 늘어나기는 했으나 기업의 저축 증가율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다.문제는 가계가 짊어진 부채다. 지난해 말까지 우리 가계가 진 빚은 734조원에 달한다. 신용카드 결제로 상품을 구입한 금액(신용판매)을 빼더라도 700조원에 육박한다.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2 년 동안만 103조원이 늘었고, 소득이 줄었던 지난해에도 45조원이 증가했다. 통화신용정책의 수장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조차도 “최근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부채, 특히 가계 부채”라고 지적할 정도가 된 것이다. 지난해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임금을 삭감당하면서 줄어든 소득을 빚으로 메운 결과,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개선됐지만 동시에 가계의 빚도 늘어났다. 여기에 은행들이 수익률 개선을 위해 가산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가계 이자비용 부담을 가중시켰다. 사실 지난해 우리 경제회복 과정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가지고 있었던 부채와 부실을 한편에서는 정부가 떠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계에서 소득 감소와 부채 증가를 감수한 대가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제위기 탈출 과정의 특징은, 국민 경제의 전체적인 부채가 축소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금융부문과 기업부문 부채가 국가의 부채와 가계의 부채로 이전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10년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가 국가 재정적자 문제와 가계의 부채 문제로 변화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를 중심으로 국가 재정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되고 있고,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가계 부채 문제가 핵심 불안요소로 등장한 이유다. 정부와 가계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금융회사와 기업의 부실을 막고 수익률을 회복시켜 줬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려 국민들도 수익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은행은 가계의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책적 행동을 해야 하고, 부실 위험 분담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을 위한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면서 법인세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조세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같은 국민경제라는 울타리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주체들이기 때문에 위기 와중에 손실을 공유했으므로 회복시기에는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이 지속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가계 부채가 지금처럼 증가세를 계속한다면, 당장 가계부실 위험이 폭발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국민의 소비 여력을 떨어뜨리면서 경제회복 여력과 잠재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0년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의 사례가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이상 같은 국민경제 안에서 이익이 쌓이는 경제주체가 따로 있고, 빚이 쌓이는 경제주체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 2010년 3월 5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저는 경제를 정말 모릅니다. 김병권님 글은 크게 어렵지 않아 곧잘 읽고 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가계의 이자 부담을 낮출 궁리란 금리인하를 말하는건가요? 금리인하로 덕 보는 건 은행 빚내서 사업하는 대기업들이 아닌가요? 은행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사금융을 이용한 대출이 아닌가요?
삼랑진댁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좀 다른 면도 있습니다…외환위기 이후에 대기업은 은행 대출을 별로 안받고 있습니다…주식발행해서 조달하고 이익금 남는 것도 많고 하니 은행에 손안벌리지요…오히려 중소기업 대출이 더 많습니다…그리고 은행들이 기업 대출보다는 가계 대출을 더 많이 하는 형편인데…
물론 신용 등급이 7등급 이하인 810만 국민은 은행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지요…이들이 저축은행이나 신협, 아니면 아예 사금융에서 비싼 이자를 물고 대출을 받는데…상당수가 서민일 확률이 높다 하겠지요…
그러나 규모로 보면 절대 규모가 은행 대출이고…은행에서 대출받는 분들이라고 해서 꼭 부유층은 아닙니다…이전까지 큰 빚 안지고 착실하게 사시던 중산층이나 서민들도 대출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이분들을 위해서는 은행이 터무니 없는 이자를 물려서는 안되겠죠…아울러 싼 이자로 빌릴수 없는 810만의 저 신용자 분들을 위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