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월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강조하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5일 연설에서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여야가 국회 차원의 사회적경제특위를 만들자고 화답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이 중진인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지난 1월 사회적경제특위를 구성했고 민주당도 2월에 신계륜 의원이 주도해서 사회적경제정책협의체를 띄웠다. 이런 움직임에는 이론적, 역사적 근거가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적 사회적 경제 형태인 협동조합에 대해서 19세기 경제학자들은 좌우, 중도를 막론하고 찬사를 보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체는 협동조합을 상정한 것이 분명하고, 같은 시대에 한계혁명을 주도한 레옹 발라는 열렬한 협동조합 예찬자이자 실천가였다. 중도파라 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 밀 역시 협동조합 형태가 “결국 세상을 지배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공언했다. 역사적으로 협동조합은 대체로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둬 왔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7원칙 중 네번째인 자율의 원칙은 협동조합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고유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경제는 농업과 국가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아주 나약한 존재였던 인간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상호성에 입각한 자조(self help) 집단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후 국가와 시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을 때도 지역공동체는 위기가 닥치면 스스로의 자원과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것이 자율성의 의미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사회적 경제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정당별로 협동조합이 조직돼 있고, 캐나다 퀘벡지방의 사회적 경제나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협동조합은 분리주의적 사회민주당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협동조합당이 노동당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의원 20여명을 배출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전통적 협동조합은 중도좌파적 성격을 띠는데 그것은 사회적 경제가 연대라는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유독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시장만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와 대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에 가장 어울리는 정당은 진보 쪽일 테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보수당이 ‘큰 사회’(Big Society)를 내세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실 정치에서 그런 성향이 뛰어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올해 들어 새누리당이 사회적 경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이슈를 선점해서 톡톡히 재미를 본 바가 있지 않은가? 특히 사회적 경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고 그동안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사회적 경제에 틈틈이 붉은색을 칠해 왔다는 걸 상기해 보면 이런 의심도 무리가 아니다. 좋은 방법이 있다. 여야가 지금 표방하고 있는 공통의 사회적 경제 지원 정책을 모아서 선거 전에 깔끔하게 법제화하라. 단지 선거용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말끔히 지우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어디 있으랴. *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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