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공화국으로 역주행 안녕하세요? 경제뉴스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굵직한 정책을 밝힐 때마다 대선 공약을 뒤집는 일은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가 됐습니다. 에너지정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여파로 박 대통령이 대선 때 밝힌 에너지정책 기조는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 아래 재검토한다는 것”, 즉 축소한다는 것이었죠. 정부는 1월 14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담은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번 계획에 따르면, 최종 에너지원별 구성에서 전력 비중은 2011년 19.0%에서 2035년 27.2%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리고 2035년 전력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6.4%에서 29%로 높이기로 했습니다. 전력 수요와 원전 비중이 동시에 늘어남에 따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원전 23기 외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이 나와 있는 11기를 더 짓고도 추가로 최소한 5기(150만㎾급 기준)의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직전 TV 연설에서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최악의 정치”를 매일 되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지속 가능한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할까요? 박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앞으로 전력을 더 많이 쓰고 핵발전으로 이를 충당하겠다는 발표를 한 겁니다. 에너지 관련 세계적 학술지인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은 지난해 52호에서 ‘영국의 저탄소 경제 이행 경로’를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티머시 폭슨(Timothy Foxon)은 시장 주도 경로(시장규칙), 정부 주도 경로(중앙 조정), 시민사회 주도 경로(천 송이 꽃)를 제시했는데요(Foxon, 2013, Transition pathways for UK low carbon electricity future, Energy Policy, V52.), 다음 표는 이 논문을 요약한 겁니다. <표1>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 경로시장 규칙(시장)중앙 조정(정부)천 송이 꽃(시민사회)가버넌스 원리시장 논리 우위.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상호 작용정부 논리, 정부가 에너지 시스템을 직접 조정 시민사회 논리. 시민이 지방과 국가 에너지 시스템에 관한 의사 결정핵심 기술탄소 포획 및 저장 기술(CCS)을 갖춘 석탄과 가스, 원자력, 해양풍력(offshore wind)석탄과 가스 CCS, 원자력, 해양 풍력, 내륙 풍력, 조력육지 풍력, 해양 풍력, 재생 가능 CHP, 태양 PV, 조력핵심 주체기존 에너지 대기업 에너지 대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정부 ESCO(신생 기업, 기존 기업의 변화), 지역공동체, NGO목표2010년에서 2050년까지 전기 수요 50% 증대. 560TWh 공급2050년까지 전기 수요 20% 증대, 448TWh 공급2050년까지 전기수요 7% 감축, 328TWh 공급위험 요인CCS의 실패,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반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의 반대, 소비자 행동 변화 필요의 무시 CCS 실패, 저탄소 투자 증대에 따른 에너지 서비스 비용 상승에 대한 반대, 소비자 행동 변화 경시 분산 발전이 비싸고 건설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 지역 해법의 취약성(중앙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여전한 의존), 최종 에너지 수요 감축 노력이 리바운드 효과로 상쇄되는 경우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과 정부는 전력 사용의 증가를 전제하는 반면 시민사회 논리는 전기 소비량의 감축, 시민들의 행동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영국에서도 에너지 대기업과 정부의 시각은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시장에 맡기자”라고 주장한다 해도, 결국 에너지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요구할 것이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정책을 구사하기 위해서도 에너지 대기업이 결국 행동 주체로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대기업은 탄소 포획 및 저장(CCS : Carbon Capture & Storage)과 같은 기술의 발전, 핵 발전 등 중앙 집중형 대규모 발전과 고압 송전을 선호합니다. 반면, 시민사회는 분산형 소규모 발전과 공동체 내부의 소비를 주장하며 시민의 행동 변화와 근본적인 경제사회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죠. 하지만 CCS의 상업적 이용이 실패한다면(불가능한 기술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핵과 석탄 중심의 중앙 집중형 발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의 이행 경로는, 아니 전 세계의 이행 경로는 폭슨의 ‘천 송이 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핵 발전 문제가 터지고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나라들도 생선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는커녕 오히려 그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지난주에도 똑같은 한탄을 했습니다만, 박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 공화국으로 가는 대한민국 새해 들어 주가가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는군요. 작년 4분기 삼성전자의 ‘어닝 쇼크(예상 실적에 못 미치는 데 따른 충격)’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포스코·SK하이닉스 등 시가 총액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시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83%(지난해 말 기준)에 이르고 삼성전자 하나의 시가 총액이 전체의 15.47%에 이르렀으니까, 삼성전자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전체 주가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요. [관련 기사] (☞ 갈수록 커지는 ‘빅2’…한국경제 혁신 동력은 약해진다)여기에 덧붙여, 1월 13일 기업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발표한 수치들이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해도 괜찮을까’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거둔 영업이익 합계는 43조1000억 원으로 국내 전체 법인(국세청 기준) 영업이익의 2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의 11.2%에 비해서 두 배나 증가한 거죠. 과연 이 현상은 바람직한 걸까요?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삼성과 현대차(또는 삼성)의 경제력 집중이 가져올 위험을 1) 경제성장 저해 리스크 2) 경제안정성 저해 리스크 3) 민주주의와 법질서 저해 리스크로 요약합니다. 이 주장에 덧붙여 약간의 해설을 덧붙이겠습니다. [관련 기사] (☞ 삼성 ‘쏠림’과 3대 리스크) 1)의 위험은 삼성(과 현대차)의 실적과 임금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시 경제 전체에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 삼성의 높은 수익률은 우리나라의 자원이 총집중된 결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어느덧 낙수효과, 즉 삼성이 고용을 늘리고 하청기업들과 이익을 공유해서 경제 전체에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는 현상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삼성은 성장하고 다른 부문은 점점 더 취약해지는 현상이 벌어진 거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점이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의 위험은 삼성의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을 말합니다. 작년 말에 나타났듯이 주가가 급락해서 패닉 현상이 나타날 수 있죠. 실물 면을 보더라도 반도체 가격 하락이 1997년 외환위기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재벌 지배구조는 총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죠.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3)의 위험은 삼성이 정부와 국회는 물론 사법제도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미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로 잘 알려진 얘깁니다. 제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도 삼성의 힘을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처럼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규제는 다 풀어주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에는 법을 내세우는 걸 정책기조로 삼는다면, 이 나라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겁니다. 도대체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에 해로운 일극(一極) 집중을 왜 방치해야 하는 걸까요? 진화경제학이나 복잡계경제학, 그리고 산업경제학 쪽의 최근 논문들은 경제의 다양한 구성이 형평성은 물론 효율성에도 훨씬 낫다고 주장합니다. 시민들 역시 삼성이나 현대차를 김연아 선수처럼 바라보는 시각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핀란드처럼 노키아가 망한 게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되는 그런 다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연합뉴스 부채의 늪에 빠진 청년과 서울 시민 기업은 나날이 성장하는데, 일반 시민의 삶은 점점 고달파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삼각동맹이 힘을 발휘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1월 10일 토닥토닥협동조합과 금융정의연대 등이 서울에 거주하는 35세 미만 미혼자 807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부채가 발생한 사유를 보면 교육이 39%, 가족문제가 17%, 생활비 부족과 창업이 각각 11%와 8%의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즉 대학에서 학자금 대출을 하거나 집안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청년들이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청년 실업률이 높다면(2013년 8.2%) 연체를 할 수밖에 없고 이 빚을 갚기 위해 훨씬 조건이 나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빚의 악순환입니다. 금융정의연대 최계연 사무국장이 청년부채 악성화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소득 수준에 맞는 원리금 면책과 6개월 단기로 완료되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소득에 따라 채무를 빠른 시일 안에 조정해서 부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겁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학자금 대출을 졸업 후의 소득에 따라 갚는 방안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즉 많이 버는 사람은 자기가 빌린 돈보다 더 많이 갚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적게 갚게 함으로써 청년들 간 연대에 의해 과중한 채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죠. 이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관련 기사] (☞ 청년부채 실상, 예상대로 참담했다) 아래 기사는 일반 시민도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서울연구원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빚 내서 빚 갚는다…” 부채상환의 악순환)매주 희망적인 기사 하나 정도는 반드시 소개하겠다는 약속, 지킵니다. 주류업계가 재정을 끊어 ‘영구 폐원 위기’에 처했던 국내 유일한 알코올 중독 치료·재활 공익 병원인 카프(KARF) 병원을 성공회대학교가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로써 ‘환자 강제 퇴원’ 논란을 낳았던 카프 병원 폐업 사태는, 평소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성공회대의 결단으로 일단락된 셈입니다. 하지만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고, 이 세수를 바탕으로 정부가 알코올(니코틴) 중독 예방과 치료를 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겠죠. [관련 기사] (☞ 성공회대, ‘영구 폐원 위기’ 카프 병원 인수)*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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