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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경제학 교과서는 “맨큐의 경제학”이었다.
여느 상경계열 신입생들처럼, 나 또한 이 책으로 “경제학입문” 수업을 들으며 경제학 이론에 첫 발을 내딛었다. 곧 그 유명한 수요와 공급 곡선을 마주하고 본격적으로 주류경제학이 설명하는 시장의 작동원리를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특정 다수의 개별적 행동들을 하나로 묶어 수치와 그래프로 나타내는 경제학자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하지만 금세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차츰 깊어지는 의문과 반론 속에서도 책 속의 맨큐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완전)경쟁시장일 경우 이러한 논리가 성립한다‘는 답변 뿐이었다. 온갖 가정으로 뒤덮힌 완전경쟁시장의 정의를 보며, 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왜 이리 열심히 분석하는 지 궁금했다. 이러한 의문에 희미하게나마 답변을 얻게된 것은 경제학을 조금 더 공부한 뒤였지만, 원론 수준의 학습에서는 경제현상을 완전경쟁시장의 논리로 재단하는 것만을 배운 것 같다.
‘경제학원론‘의 폐해
문제는 이 논리가 경제 현실을 설명하고 주장하는데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완전경쟁시장과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최저임금제도나 최저임금인상제도를 비난할 때 완전경쟁시장의 공급과잉 개념이 쓰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들이대기‘는 임대료 규제나 조세제도를 반대할 때도 이루어진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경쟁시장으로부터 빌려온 개념들을 뻔뻔하게 ‘시장논리‘니 ‘수요공급의 법칙‘이니 하며 공리인 양 포장하여 들이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경제학원론이나마 끝까지 공부했으면 말미에 등장하는 외부성(외부효과)이나 시장의 실패 정도는 감안할 듯도 한데, 시장논리를 열심히 주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그도 아닌 듯 하다.
물론 주류경제학에 경쟁시장의 논리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현실을 꽤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테지만 그것은 원론을 거쳐 다양한 심화과목들을 학습하고, 복잡한 수학 모델을 이용한 연구방법론을 깨우치고 난 후, 이를 활용한 논문이나 텍스트를 학습할 때에야 가능하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교양으로서 경제학을 배워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데 활용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결국 쉽게 접하게 되는 원론 수준의 경제학은 경쟁시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지언정, 세계를 해석하는데 쓰이기엔 위험한 도구가 된다.
최근에는 주류 경제학계 내에서도 경제학원론 교과서의 편향성에 대해 많은 반론이 제기되면서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는 하다. 물론 주류 경제학계 바깥에서는 근본인 시장원리에 도전하는 대안 경제학 이론들이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협동의 경제학>(정태인?이수연 공저, 레디앙 펴냄)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두 가지 측면에서 이들과 분명히 차별된다.
주류경제학과 대안경제학의 간극을 메우는 ‘협동의 경제학‘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상호성이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다고 설명한다. 하버드 대학 수학 및 생물학과 교수인 마틴 노박이 주장한 ‘초협력자‘는 너무나 강력해서 전 세계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호적이고 따라서 협동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몇 백만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역사 대부분을 인간은 상호적으로 행동했다. 다만 최근 300년 동안만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이 세상을 지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학문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압도했을 때 세상은 파탄이 났다.” (42쪽)
먼저, 주류 학계의 문제제기 대부분이 여전히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적인 전제와 그에 따른 한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이 책은 그 전제를 직접 마주하고 파헤친다. 인간을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는 한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시장원리를 반박하기는 무척 어렵다. 저자들은 그보다는 전제 자체가 얼마나 공허한 가정에 불과했는지 밝혀낸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을 포함하여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며, 인간의 이기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은 채 기존 경제학이 내세운 전제를 무너뜨린다.
그 과정에서 저자들은 수학적 논증과 과학적 실증을 동원한다. 이는 그동안 인문학적 관점에서 주류 경제학에 맞서온 대안 경제학의 흐름과 차별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고찰함과 더불어 각종 실험결과와 도식 등 ‘주류 경제학의 도구‘를 활용하여 주류 경제학에 대한 전면적 반박을 시도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게임이론의 활용이다. 게임이론은 경제학 안에서도 현상을 가장 단순화, 도식화 시킨 이론이다. 개체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위하는 과정을 살피는 게임이론을 통해 오히려 인간이 상호적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매우 ‘경제학‘적인 모습이다. 따라서 저자들의 주장은 그동안 소위 진보적, 비판적 경제학자들의 주장 속에서 느껴지는 이론적, 실증적 공허함을 메우는 동시에 향후 대안경제학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들은 주류경제학이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를 파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책의 중후반부에서는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적경제, 생태경제의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사회와 경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 각각의 개념과 원리를 설명한다.
이 책이 교과서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교양 서적의 얼굴로 주류 경제학의 근간을 분명하게 논박하고, 나아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모습은 대안 경제학 ‘원론’이 갖춰야 할 중요한 벽돌을 이미 쌓아낸 느낌이다. 기존 주류 경제학의 모순에 의문점을 가지면서도, 기존 대안 경제학으로는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느낀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해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 책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완전경쟁시장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 논리로 경제 현상을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듯, 이 책에서 소개되는 논리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주류 경제학 이론이 현실성을 버려가며까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명쾌하고 단순한 논리를 내세운 반면, 책에서 소개되는 게임이론을 통한 상호성과 4가지 경제의 조화 부분은 쉽게 이해하기엔 다소 모호하게 얽혀있다. 물론 저자들은 향후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하여 이를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바람을 밝혔으나, 이 또한 기존 경제학의 모순을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한편 각종 경제정책을 사례로 들며 이론을 현실과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좋았으나, 때로는 본래의 논의에서 벗어나 정치적 평가로 귀결되는 모습은 다소 아쉬웠다.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들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나, 책에서 다루지 않은 가치판단을 엮어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책 본래의 성격을 강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들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시론을 이야기하기엔 책의 주제가 다소 원론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적경제, 생태경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입장을 가급적 배제하지 않는 모습은 이 책의 장점과 주제를 극대화시켰다. 각종 분야와 의견을 하나의 주제로 아우르는 모습은 저자들의 논리가 향후 탄탄한 이론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충분함을 예고한다. 앞으로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시도는 이 책을 기점으로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최신의 대안 경제학을 다루는 동시에 미래의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훔쳐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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