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이 세상을 떴다. 한때,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국의 정치인은 그녀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꼽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영국 시민의 시선은 둘로 나뉜다. ‘역사로서의 현재’를 의식하면서 당대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는데, 특히 두 명의 켄은 신랄하다. 먼저 그녀가 총리일 때 런던 시장을 지낸 켄 리빙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오늘날 주택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은행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녀는 실업수당의 위기를 만들어냈다. …실로 우리가 오늘날 맞고 있는 모든 현실적 문제는 그녀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일들의 유산이다.” 대처 스스로 최고의 초기 업적으로 꼽는 탄광노조 탄압을 소재로 한 영화, <케스>를 감독한 켄 로치는 더욱 독하다.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매에 올려 가장 싼 가격의 장례업체에 맡기자. 그게 그녀가 원했던 방식이니까.” 이 두 명의 켄은 죽은 자 앞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일까? 마거릿 대처, 그녀는 지난 30년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그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그녀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일”은 지구 반대쪽, 한반도 남녘에서 재현되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겠다고 나섰다. 이유는 강성 노조 때문에 의료원이 “돈 먹는 하마”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영국민에게 남은 유일한 자존심, 국가의료체제(NHS)의 해체는 대처의 소원 중 하나였다. 의료 부문에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은 케네스 애로의 논문 <불확실성과 의료의 후생경제학> 이래 경제학자들의 상식이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실패’가 다 관찰될 뿐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넘실대는 곳이 의료 부문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만리장성과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고 민간 의료보험 회사와 대형 병원은 ‘단물 빨아먹기(cream skimming)’로 돈을 벌 수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경우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MRI를 찍어야 하고 3일 입원해야 한다”라는 의사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가? 또한 치료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병원비를 미리 알 수 없으니 값싼 진료를 선택할 방법도 없다. 반면 병원은 건강보험 비급여 부분(MRI나 초음파 촬영, 고급 병실처럼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 부분)을 늘려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민간 병원이 보통 병실의 장기 입원 환자를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시장 실패가 공공의료기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설령 시장이 훌륭하게 성공한다 해도 시장은 돈 없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예컨대 필수 약품 시장, 식량 시장은 시장 실패의 사례가 아니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에이즈 환자들은 약품을 살 돈이 없어서 죽어가고 북한 주민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시장의 ‘근본적 한계’다. 대안이 있다면 내놓고 토론하라 그러므로 시장 이전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필요를 정의해야 한다. 존 롤스가 기본재라고 부른 것, 아마르티아 센이 필수 능력이라고 부른 것, 바로 ‘공공성’이다. 공공성의 외연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사뭇 다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지금 정치적으로 합의해야 할 일인 것이다. 예컨대 “돈 없어서 굶어 죽으면 안 되고, 돈 없어서 치료를 못하면 안 된다”라는 합의는 시장보다 훨씬 앞선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는 평균 시청률 45%, 순간 시청률 75%를 기록했다. 홍준표 지사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 중 강우석 검사(박상원)의 모델이었다. 그는 1993년 슬롯머신을 수사하면서 카지노 업계의 대부 정덕진, 그리고 돈을 받고 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마저 구속시켰다. 그의 눈에는 진주의료원의 노조가 조폭이고, 그를 말리는 보건복지부는 비리 상사로 보이는 것일까? 하지만 그가 지금 구속한 것은 국민이 합의한 공공성이요, 정치다. 물론 사회적 권리로서의 필요를 충족시킬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토론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정치를 시장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법도 능사가 아니다. 홍 지사는 이제 명백히 시대착오로 판명난 대처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 것일까? 의료 공공성을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충족시킬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것을 내놓고 의회와 토론하는 것이 바로 도지사가 할 일이다. 시장에 맡기면 그만이라는 건, 한 시대의 광신이었고, 그 우상은 이미 죽었다. * 이 글은 시사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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