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새사연 희망 북클럽 ⑤>『시민의 불복종』-법 보다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구애- 추천도서 –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강승영 옮김), 이레, 1999국민이 되기 전에 인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국민과 괴리된 국가, 정부에 시민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사후 1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더 나은 민주국가를 바라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법안을 만들거나, 다수가 뽑은 정부라는 미명 하에 국민의 이익과 상관없는 옳지 않은 정책을 추진하는 행태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넷 매체의 발전 때문인지 아니면 정부나 국회의 문제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요 몇 년 사이 이런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럴 때면 결국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인데 정부인데 왜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혹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처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이런 고민에 대해 150년전 죽은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란 글을 통해 시민불복종이란 답을 내놓았다. 원제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인 비교적 짧은 이 글은 소로우가 죽은 다음 “시민의 불복종”이란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그는 제국주의자들과 대농장 소유주들이 요구하는 영토확장을 위한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고, 흑인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미국정부에 대한 항의로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했는데, 결국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다행히 하루 만에 친척의 대납으로 풀려나지만,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이와 같은 경험 그리고 국가권력에 대한 성찰은 부당한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하는 “시민의 불복종”으로 이어지게 된다.다수의 불의에 저항하라본문에서 소로우는 ‘불의의 법들이 존재할 때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수를 설득해 법을 개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결론은 저항하며 그 법을 어기는 것이다.그는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고 말하며, 비난받을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그는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며, 노예제도를 용인하는 부당한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는 비록 인두세 납부 거부가 당시의 법을 어길지라도 양심을 따르는 자유로운 시민을 인정하는 미국의 헌법, 혹은 그 이상의 양심, 정의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사실 단순하다. 짧은 글 속에서 그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양심, 정의에 대한 존경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귀한 인간으로서 이런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더 나은 정부, 국가를 위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라이와 함께 소로우는 자신이 택한 불복종의 실천에 대해 정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달리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자신이 순응할 수 있는, 그래서 인두세도 기꺼이 낼 수 있는 정의로운 정부가 되길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개인에 대한 존중을 위해 국가가 진보한 것처럼 국가의 권력과 권위가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주는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 정부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이를 위해서 그는 시민들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나은 국가,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처방책을 찾기만을 기다리지말고, 자신이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 반대를 외치며 인두세 거부를 택한 것처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존경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는 다수가 아닌 소수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라고 하며,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소수일지라도 다수가 될 때까지 잠자코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정의를 거스르는 정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그릇된 행위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다수인가가 아닌 누가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한민국, 시민 불복종은 유효한가?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간디, 우리나라의 함석헌 등 많은 사상가들이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찬사를 보낸 것은 그의 사상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국가나 정부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불의에 저항하고 양심과 정의를 따라 행동하는 개인이 있어야 한다는 소로우의 생각은 그의 사후 150년 동안 민주주의의 진보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그렇다면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과연 어떨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 내리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정부는, 법은 양심적이고 정의로운가?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는가?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이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잘 따르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우리들은 2013년 대한민국에 “시민의 불복종”이 가지는 의미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소로우의 글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150년 전에 죽은 소로우의 생각이 현실에 완전히 부합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았던 그의 생각이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을, 내가 해야 하는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저자 소개1817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신비주의자, 초절주의자, 자연철학자’로 묘사한 소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에 대한 선호, 사회와 정부에 대한 개인의 저항 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 강연에 이르기까지 시간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 데 할애하며 보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월든』(1854)은 친구이자 멘토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소유한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지은 오두막집에서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홀로 생활하며 보낸 경험을 토대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고 자급자족적인 삶에 대한 내면 성찰을 담은 에세이이다. ‘자발적 고립’이라는 형식을 통해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과의 투쟁을 담은 『월든』은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20여 권이 넘는 다른 저서, 논문, 에세이 등과 함께 생태학과 환경사의 방법론을 제시한 저작으로서, 20세기 환경운동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부당한 시민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한 에세이 『시민 불복종』(1849)은 1846년 7월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투옥을 당한 경험을 생생히 그리면서 노예 해방과 전쟁 반대의 신념을 밝힌 역작이다. 20세기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다 1862년 콩코드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소풍』(1863), 『메인 숲』(1864)이 있다.* 출처: 알라딘 책 소개
공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 프랑스 대학입학 철학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친구인가’ … 철학시험에 정답이 있을순 없지만 아마 21세기인 한국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면 누군가 고발당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언제쯤 이런 고민을 청년들에게 성장의 과정쯤으로 던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