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세 명의 유력 후보들 사이의 지지율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책이 구체화되고 우선순위가 명확히 선별돼 국민 앞에 제시되지 않고 있다.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완성된 공약집을 선보인 캠프는 단 한 군데도 없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정책 비전은 일단 화려한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는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고, 안철수 후보는 최근 ‘혁신경제’라는 것을 화두로 꺼냈다. 모두 낙관적인 비전들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적인 경제환경은 대선후보들의 낙관적인 비전을 수용해 줄 여건이 도무지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모두 떨어뜨린 바 있는데, 단기적 전망뿐 아니라 장기 진단도 우울하기만 하다. 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세계경제가 괜찮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데는 금융위기 시작(2008년)으로부터 적어도 10년은 확실히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슨 소리인가. 최소 2018년까지는 경기불황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차기 정권(2013~2017년)은 집권기간 내내 세계경제 불황의 터널 속에서 생존하고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이는 국제통화기금의 최근 전망에서만 거론된 것이 아니다. 새사연은 올해 상반기에 펴낸 대선 정책 단행본 ‘리셋 코리아’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대침체를 넘어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올해 대통령 선거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가 될 정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야 침체 극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장기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경제의 외형을 마사지하거나 성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체질을 바꾸고 구조를 개편하는 그런 수준의 개혁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기존의 수출의존형, 부채의존형 경제발전 모델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출의존형 발전전략이나 부채의존형 발전전략 자체가 이미 불황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을 정점으로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내년 이후까지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출이 둔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수년 동안은 이웃 국가 중국의 호조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이 9~10%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게다가 모든 나라들이 위기탈출 대책으로 환율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출을 늘리려 한다. 수출의존형 발전전략이 고스란히 불황 속으로 들어가는 전략인 이유다. 부채의존형 발전전략도 마찬가지의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1천100조원의 가계부채는 부동산 경기하락과 맞물리면서 우리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어마어마한 장애물이 됐다. 가계부채로 인해 금리정책 등 많은 거시정책이 제한을 받고 있다. 가계부채는 얼마 안 되는 국민들의 소득을 이자와 원금상환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심각한 구매력 약화를 불러와 내수를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득 불평등 문제로 돌아가서 국민경제 총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가계에 대해 소득이라는 ‘성장 연료’를 주입해 줘야 한다. 우리는 내수와 수출의 동시 위축이라는 총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구조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가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는 해결책이 바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성장 전략이다. 다시 말해 ‘소득주도 성장전략(Income-led Growth Strategy)’이다.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포용적 성장전략 안에 소득주도 성장을 매우 중요하게 위치시켰다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도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고용이 따르지 않는 성장은 궁극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켜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분배와 보상을 해 줘서 구매력을 키우는 것이 결국 내수시장 활성화를 가져와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적시했다. 소득주도 성장전략에 대한 이해의 틀을 흡수하고 있다. 물론 박근혜 후보에게는 노동자와 중소상인의 소득을 키워 내수를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그런데 다시 걱정스러워지는 대목도 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이처럼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전략이라는 낡은 시스템을 폐기하고,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이 더 이상 구체화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두 후보의 정책 창고에서 벌써 녹슬고 있는 것인가. 10년 장기불황이 언급되는 마당이어서 더욱 걱정스럽다.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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