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학계 등에서 계속 제기돼 왔던 재벌집단에 대한 정의와 규제를 담은 별도의 법률, 즉 기업집단법 혹은 독일식 콘체른법을 새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독립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재벌집단을 독립된 법인격 실체로 인정해 주고 내부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양해해 주는 대신 실질적인 소유와 경영통제구조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규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새사연이 펴낸 <리셋 코리아>에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자는 제안의 도입부분이다. 지금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맞춰 각종 개혁법안들도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 폐지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부활·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금산 분리 등이 거의 단골메뉴로 거론되고 있다. 각 제도의 실효성과 효과성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재벌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규제의 틀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규제도 없어진 시장에서 재벌이 공룡이 돼 이익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자·상인·중소기업·소비자 등 나머지 경제주체들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산업생태계의 파괴다. 다시 재벌이라는 공룡에게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미 한국의 재벌집단은 15년 전 외환위기를 일으킨 재벌집단에서 한참 진화해 왔다. 글로벌 경제환경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 출자총액제한 제도·순환출자 금지·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 과거식의 사전적 자본규제만으로는 실효적이지 않은 측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식 규제제도를 다시 부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후 미래까지를 감안해서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 기업집단법이 있다. 기업집단법은 “개별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실체라는 점을 상법적 각도에서 인정하고 그 존재와 구성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재벌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회사법인 상법의 범주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특수한 실체로서 기업집단을 규정하는 ‘상법의 특별법’으로서 기업집단법을 새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집단법 안에는 기존 공정거래법 안에서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기업집단, 즉 재벌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다만 기업집단법에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집단의 일반적 정의를 한 후 공정거래법에서 자산규모 5조원 이상과 같은 독점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집단을 지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기업들, 즉 계열사 관계 성립과 해지 요건, 계열사 편입의 법적 허용 범위 등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 현재 출자 지분율 요건 등에 대해 대통령에 정하도록 유보된 것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명목적인 출자지분에 의한 계열사 편입과 함께 실질적 지배개념을 적용해 위장 계열사 등의 논란을 가급적 축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순환출자 구조 등을 아예 합법적인 기업집단 구성요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나아가 기업집단 전체의 지휘통제 구조를 규정해야 한다. 지휘통제의 동일인이 재벌총수인지 지배기업인지 등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지휘통제 조직의 존재와 법적 지위를 규정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집단법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검토만 하고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재적 대권 후보인 안철수 교수가 기업집단법을 재벌개혁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주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안 교수는 최근 발간한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재벌그룹은 사실 현행 법규상 초법적인 존재”라며 “현행법에는 재벌체제에 대한 규정이 없고 주주 중심의 개별회사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제대로 규제하자는 논의가 있고, 저도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놔두지 말고 기업집단법을 만드는 게 옳다고 본다”고 주장했다.상당히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정당들도 더 이상 기업집단법을 서류뭉치 속에 던져 놓지 말고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 기회에 기업집단법 논의가 미래의 재벌체제를 개혁하는 중요한 대안으로 공론화되기를 기대한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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