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상한 유로위기 2010년 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위기가 또 다시 부상하고 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이미 유로위기의 본질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A currency without a country! 그리고 자가면역질환처럼 유로 자체의 파괴를 우려할 정도로 ‘긴축’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로.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이하 ECB)는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지난 해 여름부터 시작된 위기도 12월 3년 만기 장기대출 1조 달러를 민간은행에 풀고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사실 ECB가 직접 국채시장에 1조 달러를 개입하였다면 지금처럼 위기가 확산될 까닭이 없다. 민간은행에 대출한 1조 달러는 어디로 갔는가? 일부는 단기 대출이 장기로 차환되고 나머지는 신용경색에 대비하여 ECB에 초단기 예금으로 예치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ECB는 또 다시 벼랑 끝에 내몰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눈을 돌려 아르헨티나를 보자. 지난 3월 말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페르난데스는 중앙은행법 개정안에 서명하였다. 이로써 페소와 달러의 가치를 연동한 악명 높은 1991년의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 체제의 종말을 선언하게 되었다. 통화위원회는 물가안정목표제의 극단적인 버전이다. 통화규칙에 따라 국내통화량을 늘리려면 외환보유고를 늘려야 한다. 또한 외환보유고를 늘리려면 자본자유화, 금융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요구된다. 그리고 수출증대를 위한 임금억제, 정부지출 축소와 같은 긴축 성향의 거시경제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잘못된 경제정책의 대가는 막대했다. 1999~2002년 GDP의 20%가 감소하는 심각한 경기침체, 25%에 달하는 실업률은 결국 2002년 국가디폴트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지금 그리스와 거의 닮은 꼴이다. 그러나 2003년 페르난데스의 남편 키르치네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사민주의 정책으로 전환하여, 2003~11년 연평균 7.5%에 달하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정부가 구축한 정책 프레임과 능력 범위 내에서, 물가안정, 금융안정, 그리고 사회공정과 부합하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촉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본원통화의 12%에 달하는 금액을 정부에 직접 대출할 수 있고, 정부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무엇보다 장기 생산적 투자에 활용하도록 국내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도록 하는 등 산업정책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ECB, 중앙은행 본연의 책임을 다하라. 신자유주의의 핵심 프로젝트는 경제정책을 민주적 과정과 단절하는 것이다. 즉 ‘독립적’이고 무책임한, 이른바 전문가의 통제 하에 맡기려는 의도다. 그리고 그 전문가는 신자유주의 교리에 충실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로 채우는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정균형 또는 재정건전성의 필요성을 사탕발림처럼 역설한다. 경기 조절적 거시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환율은 유연하게 또는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마지막으로 통화정책은 오직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두 가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하나는 정책적 독립으로서 ‘물가독립’이다. 중앙은행은 전통적인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외환정책, 최종대부자 기능과 관련한 금융정책, 그리고 산업정책과 결부된 신용정책 또한 담당한다. 물가안정목표제는 중앙은행의 책임을 물가로 한정하여 다른 중요한 정책 목표와 수단을 제거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부로부터 정치적 독립이다. 이는 정치적 감독 또는 민주적 과정으로부터 배제를 함의한다. 그리고 금융세계화, 금융탈규제, 자본통제 해체와 같은 IMF와 국제금융기구의 이데올로기가 전파되고 확산되는 창구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것이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앙은행 독립성’의 실체다. 최근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ECB의 사례다. 여전히 물가안정과 도덕적 해이를 내세우며, 남유럽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인데도 여전히 긴축을 설파하고 있다. 유로위기의 해법은 분명하다. ECB가 지금 당장 나서야 한다. 금융시장의 공포와 패닉을 멈추기 위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남유럽 국가들에 대해서 특정 금리(예를 들어 독일 금리의 5%)를 초과하지 않도록 개입할 것을 천명하고 직접 채권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해야 한다. 금융시장에 이를 보증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는 ECB다. 그리스는 이미 유동성 문제로 해결할 시점이 지나가 버렸다. 채무 구조조정 또는 유로 탈퇴를 고려한 그리스 연착륙 계획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ECB가 늦을수록 또 다른 그리스의 불행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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