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다. 총선 경쟁에 막 불이 붙었을 때 한국은 가히 여성 대표의 전성시대였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심상정 공동대표…. 그리고 총선이 끝났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한명숙 대표는 결단이라는 자질의 의심을 받으며 퇴장했고, 이정희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한 고비를 넘겼지만 곧 이은 당내 부정선거 시비에서 ‘정치적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위기 때 여성이 지도자를 맡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극심한 금융위기를 당한 아이슬란드에서는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가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고, 영국의 심리학자 라이언과 하슬럼에 따르면 기업 역시 위기를 맞을 때 여성 경영인을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체제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를 위기라고 정의한다면 여성 지도자를 임명하는 건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이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른바 ‘유리천장’을 뚫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라이언과 하슬럼의 말대로 “그들은 자신이 ‘유리절벽’(Glass Cliff)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위기를 수습하지 못한다면 이들 여성 지도자는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이다.여성 리더십의 고정관념적(stereotypic) 특성인 소통과 협동, 직관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사회적 딜레마 상황(개인 또는 개별 집단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을 타개할 묘방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은 장기간 직위를 맡아서 시스템과 조직 규범을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다. 단기 해결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장기의 장점은 무력하다.박근혜 위원장의 성공은 여성적 장점이라기보다 오히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남성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인들 대부분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던 대처 영국 총리와 유사하다. 1970년대 말, 배제의 정치는 당시 막 떠오르고 있던 신자유주의 흐름을 탔다. 문제는 박 위원장의 정책 기조가 2012년 현재의 시대적 흐름과 일치하는지 여부다. 만일 그 반대라면 남성적 특성은 오히려 나라를 망치는 리더십으로 귀결될 것이다.현재의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한국 경제와 정당정치의 위기는 ‘변화의 리더십’을 요구하며 그 방향은 신뢰와 협동 등 여성적 특성을 가리키고 있다. 집단 간 갈등의 민주주의적 해결 없이 위기는 수습될 수 없고 경쟁 일변도의 신자유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각 집단이 진심으로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여성 리더십은 진정 불가능한 것일까.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의장을 맡은 심상정 대표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이 글은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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