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발효, 관료들의 자기 검열이 시작되다.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가 3월 15일 0시를 기해 발효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공언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 야당이 천명하고 있는 집권 후 전면 재협상이 남아 있어 아직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벌써 일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에 우정사업본부가 보험 분야의 ‘보편적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려던 시도를 중단한 사건은 관료들의 ‘자기 검열’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관료들의 자기 검열이야말로 한미FTA가 노리는 가장 중요한 효과 중의 하나이다.해당 사건은 우체국보험의 가입한도 4,000만원을 50% 인상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현행 가입한도는 1997년부터 16년째 묶여 있고 민간금융기관의 지급보증 한도 5,000만원보다 낮다. 우정사업본부는 오랜 숙원의 해소를 위해 법률 개정안을 지난 해 11월에 국회에 올리려고 한 바 있었는데, 12월에는 한미FTA 비준 동안의 국회 통과 이후 1월 초에 돌연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반발한 사실이 알려지자 주관 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자체적인 판단이었을 뿐 외부 반발과는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식경제부의 발표는 ‘자기 검열’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므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법률개정안은 한미FTA 협정에 전혀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비준 동의안이 통과될 때, 우체국보험에 관한 법률안도 동시에 날치기 통과된 바 있다. 개정 법률안은 우체국보험의 신규 상품 출시를 금지하지만 한도액을 올리는 것은 금지하지 않는다.우체국금융의 공공성, ‘보편적 서비스’우체국보험은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질병과 재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제공하는 ‘보편적 금융서비스’의 하나로 인정된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민영보험과는 달리 ‘무진단보험’이며 저렴한 가격에 제공된다. 1929년부터 시작된 우체국보험은 은행이 없는 농촌 벽지에까지 우체국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보험의 보편화에 기여해 왔다.우정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마지막 남아 있는 ‘네트워크 공공재’이다. 정부가 운영해 왔던 철도와 자원, 도로, 통신 등 거의 모든 네트워크 공공재는 이미 민영화되었다. 기업에 팔리거나 공사 형태로 전환된 것이다. 국민들이 자기 삶을 향상시키는 기회 자체를 얻는데 필요한 기본 공공재는 무상 또는 저가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는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인 네트워크 산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빈은 이러한 원칙을 ‘특수 평등주의’라 명명한 바 있다.우체국금융의 새로운 임무, ‘금융소외’ 해소저신용자가 700만을 넘어서고 저소득자들이 긴급자금 대출을 위해 고이율의 대부업체로 내몰리는 현 시점에서 우체국금융은 ‘금융소외 해소, 금융통합’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적자산이다. 그 힘은 전국적 네트워크, 국가 공인의 신뢰성 그리고 금융업무에 대한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다. 우체국보험의 한도액을 높이지 못한 것이 무에 그리 큰 일일까 싶지만, 한미FTA는 새로운 보편적서비스 확대의 과제를 폐기시키고 있음을 눈치챌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만들어 놓은 ‘금융의 사회적 통합’, 즉 금융부문의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중차대한 과제이다.이 글은 여성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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