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는 이제 걱정을 넘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되고 있다. 임금 억제 등의 명분으로 삼으려고 전통적으로 엄살을 떨었던 기업들은 그렇다 치자.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준답시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 왔던 정부조차 이번에는 스스로 비관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올해는 내리막인가 보다. 그런데 온통 우리경제가 비관론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모두 같은데 내용을 뜯어보면 진단과 과제가 제각각이다. 하나의 현실을 해석하고 해법을 내놓는 경우가 정말 다양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우선 기업의 견해를 보자. 삼성경제연구소는 ‘2012년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라는 글을 통해 올해 우리경제의 3대 과제로 경제 안정화와 신시장 개척, 갈등 완화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경제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인식을 깔고 있다. 각 과제를 좀 더 자세히 보면 첫 번째, 경제 안정화 과제란 어차피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물가안정·재정 건전성 유지·금융안정이라도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한국경제의 핵심과제로 제시한 ‘시장 개척’은 그야말로 기업연구소다운 발상인데,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인한 수출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 특히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 등 새로운 신흥시장(Next China)을 개척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자는 삼성의 화두가 향후 어디로 튈지 지켜볼 일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FTA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활용도를 제고하자”면서 FTA 체결로 수출이 늘어날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삼성경제연구소는 수출 부진을 또 다른 수출활로를 열어 풀겠다고만 하고 이번 기회에 내수기반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없다.무엇보다 기업연구소다운 보수적 색채가 드러나는 대목이 세 번째인 ‘갈등 완화’라는 표현이다. 모두 아는 것처럼 누적돼 온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고실업의 지속, 과도한 부채의 축적구조가 전 세계 국가들에서 소비회복과 경기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 원인임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평등을 개혁하기보다는 정부의 긴축을 강요하는 정책만 난무하자 월가 점령운동을 정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저항하는 99% 운동이 확산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 한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인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단순히 ‘갈등 완화’라는 국적 불명의 사회학적 개념으로 얼버무린 것이 딱 삼성 스타일이지 않은가.기업의 견해와 함께 흥미가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정부의 경제위기 진단과 해법이다. 기획재정부는 과거 위험요인이 1개씩 왔다면 이번에는 유럽 재정위기, 원자재 가격 충격, 양대 선거 리스크라고 하는 3대 요인이 한꺼번에 닥친 ‘복합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유럽의 위기가 가장 큰 외부적 위험요인임은 금방 이해가 되지만 원자재 가격 충격과 양대 선거 리스크를 그에 준하는 위험요인으로 보는 것은 일반의 상식과는 어긋난다. 다소 황당한 것은 원자재 가격 충격요인을 큰 위험요인으로 놓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이란 제재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이라는 점에서 이는 경제적 위험요소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에 따라 우리 정부가 자초한 정치적 위험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아무튼 ‘복합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일단 올해 상반기에 재정의 60%인 165조원을 조기 집행하는 한편 컨틴전시플랜 1단계 ‘변동성 확대’, 2단계 ‘자금 경색과 실물경기 둔화’, 3단계 ‘급격한 자본 유출과 실물경기 침체’를 설정하고 아직은 1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연구소에 비하면 상황관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고 상당히 선거를 의식한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세 번째 위험으로 지목한 ‘양대 선거 리스크’가 경제의 핵심 위험으로 전환되는 것 역시 정부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 2008년 이후 유럽의 위기를 포함해 유난히 외부충격 요인이 많고 계속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민경제 내부적으로 외부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하고 완충할 수 있는 구조와 틀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조건 개방이 아니라 외부충격을 흡수할 금융적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수출의 급격한 둔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동력을 유지할 기본적인 내수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내수기반은 결국 국민들의 소득에 의해 뒷받침되는 구매력이다.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소득이 증가하는 대신 부채가 늘어 구매력을 높이기 어려운 현실적 구조가 바로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이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 연구소도, 정부도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와 핵심과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미국 대선이 끝난 후 2008년 1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인 폴 볼커는 차기 대통령에게 “그동안 미국인들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이 소비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라 타이슨은 볼커 의견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로라의 말이 맞다고 판정했다. 그렇다. 미국이나 우리나 국민들의 소득이 정체했다는 것이, 그래서 도무지 내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진짜 위험요인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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