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떠나간 기차가 아니다. 우리는 눈물 흘리며 손수건 흔드는 배웅객이 아니라 기차에 타고 있는 여행자다. 애초에 타지 말았어야 할 기차지만 얼결에 올라탔으니 최선을 다해서 기차가 탈선하지 않도록 하고 낭떠러지에 이르기 전에 내려야 한다. 우선 대통령이 비준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모든 협정은 국회를 통과한 뒤에 대통령이 준수에 관한 서한을 상대국에 보내야 한다. 통과되자마자 좋아라 편지를 부친 게 아니라면 단 한번만이라도 왜 국민이 반대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 한나라당은 한-미 에프티에이 협정과 함께, 이 협정과 어긋나는, 이른바 비합치 법률 14개를 통과시켰다. 앞으로도 더 많은 법률과 조례가 개정될 것이다. 통과된 법률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법이 개폐될 것인지 조사하고 이를 막아야 한다. 예컨대 국회 끝장토론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우리 농산물로 급식을 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과거 대법원에 우리 농산물 급식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는 의견을 제시해서 수많은 조례를 개정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부처의 수장이 말을 바꾼 것이다. 우리가 누누이 강조했던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로 이렇다. 우리가 따지면 따질수록 공무원들이 지레 겁먹고 정책을 포기하는 일이 줄어든다. 유통법-상생법이 바로 좋은 예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토론에서 나는 정부가 암에 대해서 100%를 보장하면, 즉 암 치료비를 한푼도 내지 않도록 하면 투자자-국가 중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은 당연히 에이아이지(AIG) 암보험을 해지할 것이고 이른바 최소기준대우(국제관습법상 과도한 정책인가, 아닌가)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료는 예외조항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장 건강보험 보장성을 90% 이상으로 올리자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 주장과 달리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고치도록 압박해야 한다. 셋째,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자발적 민영화와 규제완화다. 사실 한-미 에프티에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서비스분야였다. ‘경쟁적 자유화’라는 미국 에프티에이의 전략을 창시한 로버트 졸릭(현 세계은행 총재)이 공언한 대로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규제완화야말로 미국 에프티에이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6년 협상 과정에서 이 분야에서는 별다른 잡음이 흘러나오지 않아 자못 의아했는데, 그 비밀은 우리 스스로 민영화를 추진한 데 있었다. 우리 협상단은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민영화 법안들, 예컨대 자본시장통합법, 병원 영리법인화, 약사법 개정 등을 제시하고 협정문에 명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래유보에 들어 있는 분야들, 예컨대 전기, 철도, 가스, 우편 등 네트워크 산업과 건강보험을 재벌들의 바람대로 자발적으로 민영화하고 그 부분에 미국 투자자가 들어오면 그다음부터는 거꾸로 돌아갈 수 없다. 영국은 철도를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에 민영화했다가 대형사고가 빈발하자 시설부문을 다시 국유화했다.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컨대 코레일 민영화 이후 일부 주식을 미국인이 사들이면(재벌들은 분명히 미국인 투자자를 끼워넣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재국유화는 100% 투자자-국가 중재의 대상이 된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자발적 민영화를 감시하고 막아야 한다. 자발적 민영화가 일어나면 한-미 에프티에이뿐 아니라 한-유럽연합(EU) 에프티에이 등 다른 모든 에프티에이도 동시에 작동한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폐기한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협정을 이용해서 투자자-국가 중재를 요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최혜국 대우’(앞으로 어떤 나라에 지금 수준보다 더 많이 개방하면 미국이나 유럽연합에도 똑같은 수준으로 개방해야 한다)라는 세계 최초의 조항도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잠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앞으로 빈발할 크고 작은 금융위기에 대해서 정부의 긴급조처를 무력화할 것이다. 2001년 금융위기 이후 아르헨티나가 취한 긴급조처를 두고는 2009년까지 무려 47건의 투자자-국가 중재가 제기됐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거시건전성부담금(은행세), 외국인 채권구입 면세 환원 조처도 한-미 에프티에이가 발효된 상태였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앞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량살상무기’인 파생상품도 무제한 들어올 것이다. 협정문상 건전성 사유로 규제할 수 있지만 사전에 그런 위험성을 증명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소비자가 수익이 높다는 데 현혹되어 ‘파워인컴펀드’와 같은 파생상품을 구입하지 않아야 한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시장만능주의라는 구시대 이데올로기의 완결판이다. 투자자의 재산권을 인권과 생명권보다 우선시하는 협정이다. 이제 전세계는 공공성 강화와 정책공간 확보로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월가의 힘이 강해서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주요 20개국(G20)의 의제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한-미 에프티에이가 발효된다 하더라도 그 폐해를 최소화하고, 때를 기다려 낭떠러지로 향하는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 끝난 것은 ‘한-미 에프티에이 시즌1’이고 이제 ‘한-미 에프티에이 시즌2’가 시작되었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촛불을 들어야 한다. 자연과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면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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