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재정위기가 상황이 거의 막바지까지 온 이 시점에서, 도대체 유로 통화권을 왜 탄생시켰고 어떤 구상으로 발전시키려 했기에 지금의 심각한 유로 붕괴위기에 속수무책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1999년 1월 유로 통화권이 탄생했을 때만 해도 참가국들은 유로화라고 하는 안정적인 통화를 사용해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 역내 환전 거래비용도 절감하고 무엇보다 유로 역내에서의 장벽 없는 시장을 형성해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내에서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상품의 이동, 자본의 이동, 노동의 이동을 통해 북미 달러경제권에 맞서는 번영을 누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관세가 없어진 상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쟁력이 있었던 독일의 상품이 자유롭게 남유럽으로 수출됐지만 남유럽의 상품은 독일로 넘어가지 못했다. 상품 수출이 증가한 독일은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면 독일의 자본이 낮은 비용을 찾아 남유럽으로 이동하고, 남유럽의 노동은 일거리가 많은 독일로 이동하든지 해야겠지만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의 자본은 임금이 더 싼 동유럽으로 이동했고 남유럽의 노동자들은 짐을 싸서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지 못했다. 사람의 생활터전을 옮기는 노동의 이동이 자본의 이동만큼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어와 문화와 사회제도가 다른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결국 독일·네덜란드 등 경쟁력이 있는 국가의 수출은 계속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는 쌓였고, 반대로 남유럽 국가들은 적자가 쌓이고 경쟁력은 약화돼 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를 완화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가격 경쟁력을 올려야겠지만 유로 통화를 함께 쓰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경제성장률이 추락하고 실업이 늘고 소득이 줄기 시작했다. 국내 수요도 줄고 조세수입도 줄었지만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하거나 부실은행을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조세수입이 줄었으니 국채를 발행해 재정여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유럽 국가들은 이미 국내 저축이 없어 국내에서 국채를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럴 경우 통상 그 나라의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국채 물량을 받아 주겠지만 남유럽의 중앙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 국채를 매입하지 않기로 약속해 버렸다. 남은 방법은 정부의 국채를 외국에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같은 유로를 쓰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은 별 제약 없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사들일 수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이 위험도가 높지만, 동시에 수익률도 좋은 남유럽 국가의 국채를 대거 사들여서 남유럽 국채를 소화해 줬다. 이런 식으로 남유럽 국가들은 대외 채무국이 됐고 북유럽 상업은행들은 채권자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재정적자가 늘고 비례해서 대외 국채 발행규모가 커지자, 위험을 느낀 은행들과 투자자들이 남유럽 국채시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이자율은 올라갔다. 끝내 유로 통화권 국채시장에서 추가적인 자금 동원이 어려워지면서 이른바 남유럽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로 통화권 17개 국가가 진정으로 하나의 연방국가라면 서울에서 세금을 많이 걷어 지방살림을 도와주는 것처럼,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이 나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지원에 들어가고 유로 통화권 전체적으로 소득과 부를 재분배해야 마땅하겠지만, 이들 국가들은 여전히 각기 다른 국가들이며 각기 국가적 이익과 실리를 챙기는 관성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 지금 남유럽 국가의 지원에 대해 독일·프랑스 등이 소극적인 현실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유로연방 건설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각국이 기꺼이 통화주권을 포기하고 단일 통화체제와 단일 중앙은행 체제를 만들었지만, 역내 국가들 사이의 경쟁력 격차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상품과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균형이 만들어지고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던 기대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통화 동맹이라는 강력한 환경 아래 국경을 넘는 무역과 자본, 노동이동의 자유화 기대는 이렇게 존립의 위기에 닥쳐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더욱 자유로운 무역과 이른바 ‘경제영토 확장’의 꿈을 가지고 한미FTA를 접지 않고 있다. 과연 한미FTA가 한국과 미국의 경쟁력 격차를 줄이고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해 줄까. 최근 유럽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국이 한국에 수출을 크게 늘리고 수입은 아예 줄여서 무역수지 적자를 작년 82억유로에서 올해 8월까지 28억유로로 줄였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유럽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EU FTA의 효과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기대와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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