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과 크릭에 의해 DNA 이중나선의 구조가 밝혀진 것이 60년 전의 일이다. DNA 구조의 발견이 서구사상사의 오래된 본성과 양육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DNA 구조의 발견이 본성 쪽에 손을 들어 준 것도 아니다. 이중나선의 구조가 밝혀지기 훨씬 오래전부터 유전학자들은 다양한 생물학적 현상들의 대물림을 연구하고 있었다. 왓슨과 크릭보다 100여년 전에 이미 멘델은 완두콩의 콩깍지 색깔이 정확히 1:3의 비율로 유전된다는 현상을 발견했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의 여명이 밝으며 재발견되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한 때 멘델의 유전법칙을 의심하던 토마스 헌트 모건이 초파리를 이용해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확인해냈다. 게다가 그는 초파리의 여러 형질을 대물림하는 물리적 실체가 염색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염색체 상에 그려진 띠의 모양에 따라 형질의 유전이 결정된다는 사실이었다. 그 염색체 안의 유전물질이 DNA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까지는 또 다시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20세기 중반, 노쇄한 과학자 에이버리가 단백질이 아니라 핵산이 유전물질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에이버리도 단백질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DNA로 돌리기 위해 그다지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발견을 혁명으로 포장하기엔 이미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고 전한다.유전학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때 분자생물학자들은 DNA의 유전정보를 모두 알게 되면 인류의 질병도 모두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물리학의 거대프로젝트인 초거대가속기 사업이 실패하고, 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돈이 되어 보이는 인간유전체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전 세계의 분자생물학자들이 인간유전체를 해독한 지 십여 년, 우리는 30억개의 염기서열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과학자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대중의 희망은 부서져버렸다. DNA의 염기서열을 모두 안다고 해서, 무병장수를 보장해주는 약을 만들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DNA의 유전정보가 생명현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DNA를 위한 인간유전체사업은 RNA를 위한 길을 열었다. 꼬마RNA들에 의해 벌어지는 후성유전학적 현상들이 분자생물학자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꼬마RNA들의 염기서열은 DNA에 새겨져 있었지만, 그들이 언제 발현되고 어디서 발현될지는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꼬마RNA혼자서 조절하는 유전자의 수가 너무 많아 그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노이즈가 너무 심했다. 생물학자들은 본성과 양육 그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입장으로 돌아섰다.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 DNA염기서열이 똑같은 쌍둥이라 해도, 서로가 겪은 다른 환경적 영향에 의해 발현하는 유전자의 양이 다를 수 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이런 환경적 영향은 DNA에 메틸기로 달라붙어 부분적으로는 유전될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 라마르크가 부분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DNA라는 유전물질의 발견에 의해 본성과 양육의 논쟁에서 잠시 본성이 승리한 것으로 보였지만, 생명과학의 발전은 점차 양육의 중요성을 발견해나가는 역설적인 길을 걸어왔다. 암에 걸릴 가능성은 유전될 수 있다. 하지만 식습관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성격이 유전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교육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의 색깔은 바꿀 수 없는 유전형질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컬러렌즈로 눈동자의 색깔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해 스스로의 유전적 제약을 이겨낸다.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신기한 유전학적 현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i]. 기독자유민주당의 전광훈 목사는 “빨치산의 육신적 디엔에이(DNA)를 가진 사람 가운데 한국 정치를 장악한 이들이 1천명”이라고 주장한다. 즉 빨치산 활동이라는 ‘표현형’을 보이는 ‘유전형’이 있다는 뜻이다(편의상 이 유전형을 ‘빨치산 유전자’라고 부르자).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 가운데만 1000명이라고 하니, 일반인 가운데는 천 만명 정도 될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는 매우 흔한 형질이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ABO식 혈액형이 약 25%의 분포로 존재한다.빨치산 유전자는 흥미로운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광훈 목사에 따르면 그 유전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산주의가 좋다는 분은 당신들이 원하는 나라, 북한이 있으니 재산을 포함해 다 가져가라’고 체제 선택의 자유를 줬고 그 이후에도 공산당 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처단했”던 시대 이후, 그 처단이 무서워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 빨치산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이승만을 싫어하는 형질도 물려받는다. 둘째, 빨치산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지리산을 좋아한다. 연구의 가치가 충분한 유전자라 아니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유전자의 기능을 밝힐 수만 있다면, 외국인들이 지리산을 좋아하게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관광산업 육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또한 전 목사는 “이들은 결국 사고나 논리에 따라 좌파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흐르는 가치관, 디엔에이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로, 빨치산 유전자가 빨치산 표현형, 즉 다른 말로 전 목사가 ‘좌파’라고 부르는 표현형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원인임을 밝혔다. 게다가 이 유전자가 가치관에 의해 발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현대 후성유전학의 최첨단 성과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전 목사의 빨치산 유전자 연구를 위해 몇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빨치산 유전자가 우성인지 열성인지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다. 왜냐하면 빨치산 유전자가 우성인 것으로 나타난다면, 멘델의 분리 법칙에 따라 우리나라 인구의 ¾가 좌파 표현형을 나타내게 될 것이므로, 전 목사가 공개하겠다는 명단이 엄청나게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쪼록 빨치산 유전자가 열성으로 판명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둘째, 빨치산 유전자에 의한 좌파 표현형의 발현이 단일 유전자에 의한 것인지, 복합 유전자에 의한 것인지를 빨리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단일 유전자에 의한 현상이라면 ABO식 혈액형처럼 너무나 극명한 유전법칙의 지배를 받는 형질이라는 뜻이므로, 인구의 대부분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우리나라 인구집단에서 빨치산 유전자를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 목사는 후성유전학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적절한 교육에 의해 좌파 표현형을 억제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빨치산 유전자와 지리산의 관계는 무엇인가? 혹시 지리산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빨치산 유전자의 발현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전 목사와 기독자유당은 하루라도 빨리 지리산을 출입금지 지역으로 지정해 빨치산 유전자를 지닌 국민들이 좌파 표현형을 나타낼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 그것이 기독자유당에 주어진 중대한 임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셋째, 하루라도 빨리 빨치산 유전자를 클로닝하고 염기서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과학에서 가설은 실험으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한낱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에서 정보의 공개는 의무이기도 하다. 혹시 방법을 모른다면 필자가 이를 도와줄 수 있다. 공개하겠다는 정치인들로부터 머리카락이나 피를 기증받은 후, 이를 23andMe 같은 개인유전체 서비스에 염기서열 해독을 의뢰하면 된다. 이후 조금은 지루한 통계적 작업을 거쳐야 하고, 여기서 빨치산 유전자의 존재를 검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작업을 할 수 없다면 전 목사의 가설은 한낱 가설에 불과해지고, 위대한 유전학의 성과는 물거품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유전학자인 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하시길 바란다.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조금은 지루할 듯 하므로, 기다림의 와중에 필자도 빨치산 유전자에 필적할만한 유전학적 발견을 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기독당 창당 유전자’와 ‘빤스 내리기 유전자’를 클로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겠다. 후자는 진정 흥미로운 유전자라 아니할 수 없다. 전 목사의 머리카락 기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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