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균형 조기 달성과 일자리 예산 확대”를 핵심 기조로 한 정부의 내년 예산 계획이 지난 9월27일 발표됐다. 정부는 “2008년 경제위기 때 나라 곳간을 풀어 위기를 잘 극복했는데 다시 곳간을 채우는 게 경제위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완결판이란 의미가 있다”면서 당초 2014년까지 달성하려던 재정균형을 1년 앞당겨 조기에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예산계획에 반영했다. 또한 내년 나라살림의 틀은 일을 중심에 두고 성장과 복지를 연계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최근 나라 안팎의 가장 중요한 핵심 화두인 ‘재정’과 ‘복지’에 대한 정부 나름대로의 답을 예산안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그러면 예산안에 투영된 정부의 ‘재정균형’에 대한 관점이 현재의 상황에 부합하는 먼저 살펴보자. 지금 세계는 재정적자 문제로 다시 한 번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지난 7월까지 정부 채무한도를 증액하는 문제로 정치권 갈등에 휘말려서 결국 경제위기를 재발 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리스는 경제위기로 급격히 불어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사실상 부도상태에 이르렀고 그 여파가 유로통화권 전체로 번지기 직전에 있다. 과연 정부가 재정균형을 주요 초점으로 삼아 예산 편성을 했던 것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초기 쟁점이 재정균형을 위한 긴축으로 이동하자 곧 금융 불안과 실물경제 침체가 이어졌다.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경제가 긴축으로 더 악화될 것이고 조세 수입을 축소시켜 재정균형마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긴축을 강요받고 있는 그리스는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의 두 배에 가까운 -8%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고 150%였던 GDP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200%까지 팽창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있을 정도다. 이로 인해 9월부터는 재정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긴축기조에서 다시 실물경기 침체를 막으려는 경기부양으로 선회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9월8일 발표된 미국 오바마 정부의 일자리 법안(American Jobs Act)이다. 이 법안은 지난 2009년 경기부양책에 이은 2차 경기부양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4천700억달러의 경기부양 대책을 담고 있다. 그리고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 국가는 조건에 맞는 다양한 증세 정책들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서 워렌 버핏의 이름을 딴 버핏세(Buffet Tax)도 그 사례의 하나다. 지금은 더블 딥 위기가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고 우리나라도 올해 말부터 그 반경 안에 들어가면서 수출둔화를 포함해 경기둔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최근 국제기구들과 연구기관들이 내년 경기전망을 4% 밑으로 낮게 보는 것만 보아도 이는 명확하다. 당연히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예산 계획이 가장 중요하고, 재정균형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소 장기적으로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이 “앞으로 금융불안이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균형 재정은 경기안정 이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복지를 달성하겠다”는 복지관이 예산에 투영된 지점이다. 지금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매우 절실하고 타당하다. 그런데 내년 예산에 반영한 정부의 4대 핵심 일자리 즉 △청년 창업(5천억원) △고졸자 취업(6천억원) △문화·관광·글로벌 일자리(1만2천개) △사회서비스 일자리(17만5천개) 등은 일자리 예산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과장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상 최초로 10조원이 넘었다고 하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 일자리 예산이 특별히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고용보험기금 이외에 일반회계 예산을 대폭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4대 일자리 예산 가운데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인 고용 증가 효과가 큰 것도 없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그 동안 매년 15~20만개 정도 늘어나던 것으로서 이 분야의 핵심 문제는 양적인 일자리 개수가 아니라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근무 등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일자리를 통한 소득개선과 복지는 분명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이지만 거꾸로 이로 인해 복지 자체가 전부 포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육아나 보육 그리고 노인 요양 등 주요 복지과제는 고용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복지가 해결해야 할 고유 영역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최근 복지지출 확대 요구가 사회적으로 크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일자리 복지’로 축소시켜 대응한다는 인상이 짙다. 결국 ‘재정균형’과 ‘일자리 복지’라는 총론적으로 매우 정당한 화두를 담아 발표한 정부의 예산안은 실제 내용에서는 상당히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담았다는 인상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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