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달러 자산을 가진 유명 투자자 워렌 버핏이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고 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모처럼 세계 경제위기 국면에서 우울한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소식이다. 버핏은 지난 8월14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자신의 지난해 납세내역을 밝히면서 돈으로 돈을 버는 슈퍼부자들의 과세비율이 노동자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수 정치인들의 감세논리를 사실에 근거해 공박했다. “1980~1990년대 세율은 훨씬 높았다”며 “높은 세율이 일자리 창출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1980~2000년에 걸쳐 거의 4천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자본소득세가 39.9%였던 1976~1977년에도 세금이 무서워 투자를 포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의 제안은 이렇다. 한 해 100만달러 이상을 버는 부유층에 대해 즉각 세금을 올리고, 1천만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추가적으로 세금을 인상하자는 것이다. 재정긴축과 신용등급 강등으로 궁지에 몰린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환영했다. 미국 시민 95%가 지지했다. 그렇게 부자가 제안한 부자 증세는 순식간에 뜨겁게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버핏의 부자 증세 제안은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나왔다. 지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국가재정 적자로 다시 경제위기를 불러들이고 있는 중이다. 겉으로 놓고 보면 지난 3년 동안 금융회사와 사적 기업들이 부실에 빠지자 정부와 중앙은행이 구원 투수로 나서서 구제해줬다. 그 결과 금융회사와 사적기업들은 부실을 털고 회생했지만 민간부채는 고스란히 정부부채로 쌓여갔다. 조만간 회생한 기업들이 고용도 늘리고 납부 세금도 늘리면서 정부 조세수입에 기여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정부의 부채규모가 계속 커졌고 그리스 등 대외 부채가 커진 국가들은 국외 은행들에게 상환 압력에 시달렸다. 결국 부채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전됐을 뿐이었다. 그러면 정부가 부실에 빠지면 누가 구원해 줄까. 얼핏 답이 없을 것 같다. 물론 2008년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경제학자들은 부채축소(de-leverage)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야 경기 회복이 될 것으로 봤고, 실업률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에도 수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렇다면 부실에 빠진 정부를 구원해줄 상대는 초 정부기구, 즉 국제기구가 돼야 하는데 IMF·UN·세계은행 어느 기구도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국제기구 대신 부자 국가들이 나설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부자 나라들이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고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당장 긴축을 한다면 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얘기다. 다시 한 번 결론이 없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기는 국민경제 주체 전부가 만든 것은 아니다. 주로 은행과 기업들이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구해주고 그 부채를 정부가 안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경제회복이 되질 않는다. 정부 구제금융과 노동자 감원과 구조조정을 대가로 회생한 은행과 기업들이 곧바로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일자리와 세금을 늘리지 않은 채 위기 이전의 패턴을 다시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수출이 늘고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경기가 되살아난 것으로 착각했고, 경기 호전으로 조세 수입이 늘어 다시 재정수지를 맞출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각국 정부는 은행들이 과거 방식으로 수익추구를 못하도록 규제하지 않았고, 은행과 기업의 구제에 상응하는 실업자와 국민들의 회생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수익이 회복된 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증세를 강화해 재정여력을 확보한 것은 고사하고 감세를 하기도 했다. 그 부담을 서민의 사회복지 지출 축소로 만회하려 했다. 사실 미국의 신용 등급을 강등한 S&P의 논리에는 미국 정치권이 합의한 10년간 재정적자 감축계획이 부실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증세와 같은 추가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한 해 평균 2천400억달러의 재정지출을 긴축해 가뜩이나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결국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의 핵심은 ‘감세’와 ‘긴축’이었던 것이다. 워렌 버핏은 여기에 간단명료한 답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세계적 재정위기를 ‘무분별한 복지지출’ 탓으로 돌리고 복지 포퓰리즘을 억제해 재정 균형을 달성하겠다는 우리 정부가 버핏의 제안으로 다시 문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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