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툭 터진다. 하릴없는 실소다.‘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갑자기 대한민국에 넘쳐나서다.기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을 연구해오면서, 이 땅에 공평과 정의가 숨 쉬는 사회만 구현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고 생각해왔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다름 아닌 ‘공정한 사회’의 사전적 풀이다. 기실 공평과 정의를 신문과 방송이 의제로 설정하기를 언론운동을 벌여오며 얼마나 촉구해왔던가. 그래서다. 2010년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후 돌연‘공정한 사회’가 넘쳐나는 ‘미디어의 오늘’에 쓴웃음이 나온다.‘공정한 사회’부르대는 정권과 언론에 쓴 웃음어떤가. 과연 오늘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공정한 사회’가 대한민국에 말뜻 그대로 공평하고 정의가 넘실대는 새로운 사회를 불러올 수 있을까? 공정한 사회를 부르대는 이명박 대통령도,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도 아마 그 물음 앞에서 남몰래 도리질 할 터다.그래서다. 에두르지 않고 한마디로 쓴다. 구리다. 출범부터 ‘친기업’을 내걸고 철저히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증진해온 이명박 정권이 언죽번죽 ‘공정한 사회’를 내건 속내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기자가 아니다.물론, 공정한 사회 ‘덕분’에 썩고 구린 국무총리-장관 후보자들은 줄줄이 사퇴했다. 하지만 사태의 핵심은 온갖 정보를 사전에 받고도 이명박 대통령이 그들을 발탁한데 있다. 분노하는 여론에 밀려 공직후보자들이 물러났을 따름인데, 마치 그것이 이명박 정권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려는 의지처럼 보이는 현상은 미디어가 조장한 착시다.비단 인사만이 아니다.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 정책수단이 많은 데도 모르쇠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이명박 정권이 내건 ‘공정한 사회’가 얼마나 구린가를 새삼 정색을 하며 논의할 필요는 없을 성싶다.다시 문제는 언론이다. 정권이 내건 ‘공정한 사회’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구린내가 언제나 ‘공정한 언론’을 자부하는 한국 언론에서 폴폴 나기 때문이다.스스로 ‘공정한 언론’내세우는 언론의 행태나는 지금 언론이 이명박 정권의 ‘공정한 사회’ 이데올로기를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해 구리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언론의 구린내가 진동하는 곳은 이명박 정권의 허울뿐인 ‘공정한 사회’론마저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데 있다.대표적 보기가 ‘전통’을 자랑하는 <조선일보>다. 이 신문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인식에는 공감한다”고 마치 선심 쓰듯 밝히면서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의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가를 사설로 따지고 나섰다. 이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발언을 겨냥해 “좌파 정권들이 보수 세력을 공격하는 무기로 써왔던 ‘기득권자’라는 단어를 그대로 빌려온 것은 정치적 감각을 결여한 선택”이라고 훌닦았다.문제의 심각성은 기득권에 연연하는 저들이 틈날 때마다 자신을 ‘공정한 언론’으로 언죽번죽 치장하는 데 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의 차장 이상급 기자들이 두루 가입해있는 관훈클럽이 ‘21세기 한국 언론의 좌표’로 낸 보고서는 우리 언론의 공정성을 누구보다 역설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정한 언론은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관 또는 잘못된 관점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 소수계층의 의견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해주어야 한다.” 곧이어 “언론이 소수의 의견이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해야 한다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미덕이 소수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부르댄다. 심지어 이 보고서는 “한국 언론은 중산층을 주된 소비자로 상정하고 있는 한편 언론인 자신들도 중산층에 편입되어 있어 주로 중산층의 의견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한다면서 “그 결과 자연스럽게 소수 계층의 의견과 이익은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부자 신문과 부자 정권의 닮은꼴 ‘공정’어떤가. 저 부자신문들이 주창하는 공정이 이명박 정권의 공정과 기막히게 닮은꼴 아닌가. 실체와는 전혀 달리 번지르르한 말의 구린내가 공통점이다. 진정성이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서울 용산에서 참혹하게 숨진 철거민들에게 마녀사냥을 일삼던 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애면글면 생존권을 요구하는 싸움을 살천스레 짓밟아온 자들이 누구였던가. <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이 아니었던가.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한국 언론이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 아래서 찌들어가는 민중의 삶에 희망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사회의 꿈을 잃어버린 겨레에게 언론이 빛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뜬금없는 요구일 터다.하지만 적어도 21세기 좌표로 스스로 공언한 ‘언론의 공정성’은 최소한 지켜야 옳지 않은가. 차라리 그런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명토박아 둔다. 공정한 사회, 공정한 언론은 말뜻만 보면 향기가 넘친다. 하지만 2010년 가을, 대한민국에서 그 ‘향기’는 구린내다. 1980년 ‘정의사회 구현과 복지국가 건설’을 ‘향수’로 뿌렸던 전두환 정권의 피비린내에 견주면 그래도 구린내가 낫다고 자위하기엔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옹근 30년의 세월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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