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황식 총리를 그렇게 했단다. 다름 아닌 김황식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언죽번죽 꺼냈다. 삼고초려. 두루 알다시피 <삼국지> ‘촉지 제갈량 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당시 유비는 미더운 참모가 없어 쓸쓸했다. 의형제를 맺은 관우-장비는 장군일 뿐이다. 제갈량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초가를 짓고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유비는 초가를 세 차례나 찾아갔다. 유비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인 제갈량이 참모로 들어왔을 때, 유비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고 기뻐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를 뜻한다. 아름답고 부럽기도 한 풍경이다. 그래서다. 곧장 묻는다. 과연 이명박-김황식을 유비-제갈량에 비유할 수 있는가? 그것도 당사자인 김황식의 입에서? 김황식이 자신을 제갈량에 비유하는 게 가당한가 오해 없기 바란다. 중국의 유비-제갈량 관계를 신비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제갈량은 출세주의자들이 활개치는 썩고 구린 정치판을 벗어나 초가집에 은둔하고 있었다. 대법관 자리에서 선뜻 감사원장으로 옮겨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던 김황식과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손수 농사를 짓던 제갈량에 견주면 김황식은 재산 관계에서 구린 곳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압권은 김황식이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다. 김황식은 “(총리직은) 청와대에서 삼고초려한 게 맞다”면서 “군대 문제가 있는데도 왜 저를 그렇게 쓰시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대통령을 뵈면 한번 물어 봐야겠다”고 주장했다. 어떤가. 대한민국의 민주시민들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다만 울뚝밸이 치밀 뿐이다. 자신도 군 면제자인 대통령에게 김황식의 군 면제 정도는 얼마나 가벼웠을까. 한마디로 말하자. 서로 구리기 때문 아닌가.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과연 그러했던가? 자신을 제갈량에 비유하는 삼고초려라는 말을 무람없이 꺼낸 김황식은 국회 청문회에서 팔자 타령까지 했다. “뜻밖의 감사원장·총리 제의가 오는데 결코 맡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속된 말로 무슨 팔자가 이렇나 하는 생각도 했다.” 명토박아둔다. 그따위 팔자타령을 하고 싶거든 총리 후보자에서 자진사퇴는 물론 감사원장에서도 물러나라. 국민은 어리보기가 아니다. 정색을 하며 묻고 싶다. 구린 곳이 모락모락 나는 인사가 삼고초려로 앉을 만큼, 대한민국 국무총리 자리는 물론, 감사원장 자리가 ‘똥값’인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감사원장 자리가 똥값인가 김황식은 2007년 4월 20일 딸이 아파트 소유권을 등기한 날에 자신의 통장에서 거금 1억2400만원이 출금됐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과연 그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인가? 더 주목할 것은 청문회장에서 정범구 의원이 밝혔듯이 총리 후보자를 검증할 민주당의 “수뇌부가 청문회를 16시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과 술과 밥이 곁들인 자리를 갖는” 작태다. 이에 앞서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김황식에게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상당한 호감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단다. 복지국가와진보대통합을위한시민회의(시민회의)가 청문회 전날에 ‘썩고 구린 정치인’의 공직취임 금지 법 마련을 위해 열고 <오마이뉴스>가 생중계한 토론회에선, 국민의 4대 의무를 공직후보 기준으로 삼자는 제안이 방청석에서 나와 박수를 받았다. 그 소박한 기준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한나라당대표, 김황식 총리 내정자는 모두 공직에 앉을 자격이 없다. 하물며 그들이 삼고초려를 들먹이는 오늘은 얼마나 역겨운가. 얼마나 구린가. 손석춘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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