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맨으로 잘 알려진 어윤대 국가브랜드 위원장이 KB금융회장으로 내정되자마자, 우리은행에 대한 인수합병 의사를 밝혔다. 정운찬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세종시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듯이, 어윤대의 내정과 메가 뱅크를 향한 그의 급한 행보는 ‘행동대장’을 내세워 기동전을 펼치는 전형적인 MB스타일의 정책추진 방식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정부만 일방적으로 메가 뱅크의 추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한국의 선두 금융기관들도 “메가 뱅크로의 재탄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고 있다. 메가 뱅크 계획은 MB의 측근인사와는 무관하게 추진되어 왔다. 다만 이 계획의 필수 요소인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민-관의 의견조율 과정이 측근인사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은행 설립 계획은 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정부와 경영계가 강력히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개혁에서 화룡점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획 자체는 동북아 금융 허브 프로젝트와 자본시장통합법(2009년 2월부터 시행)과 함께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어 왔다. 메가 뱅크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아젠다인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에 맞게 금융체제를 재편하면서 그 짝으로서 함께 추진된 금융 산업의 대형화, 겸업화, 증권화의 구체적 실현 형태이다. 처음에는 외환은행 매각에서 얻은 ‘교훈’으로 인해 은행의 민영화 시점과 그에 대한 여론을 저울질 하다가 기회를 놓쳤고, 최근에는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지금까지 연기돼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메가 뱅크 계획이 세계적인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었다면, 금융안정성을 기본화두로 G20이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체제 개혁에서는 추세적 변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난파선을 홀로 고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은 오는 11월 G20회의의 주최국이다. 주최국은 회원국들의 다양한 시각 차이와 의견 차이를 조율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과연 MB정부는 세계적 차원에서 금융안정성을 위한 공조를 주도하면서, 국내에서는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를 동시에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금융 산업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리와 연쇄파산(too interconnected to fail) 구조를 이번 세계적 위기의 핵심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금융 산업의 대형화, 겸업화, 증권화에 대한 규제를 다시 강화함으로써 금융기관의 크기와 영업범위를 일정정도 제한하는 개혁을 추진 중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일명 볼커 룰을 통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업무 사이에 일정한 높이의 차단벽을 설치해, 과거의 글라스-스테갈 Glass-Steagall 법안의 취지를 일부 재도입 하려고 한다. 또한, 규모에 대한 규제안으로서 현재 존재하는 단일 은행의 예금규모가 전체 예금 시장의 10퍼센트를 상회할 수 없도록 한 법률을(Riegle-Neal Act) 확대하여 부채에도 10퍼센트 제한 규칙을 적용할 예정이다. 규모에 대한 규제안 자체가 일정 정도 사업 범위의 축소를 강제하는 효과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J.P. Morgan Chase와 Citigroup은 자산규모 축소를 위해 자산운용사나 상품트레이딩 자회사를 매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주식, 채권, 파생금융상품 거래, 사모투자펀드, 헤지펀드 등에 대한 상업은행의 자기자본투자를 금지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대형은행의 영업범위도 축소시킬 계획이다. 왜 한국정부와 금융계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면서까지 이미 파산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려는 것일까? 관계자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 글로벌 경쟁력, 업무 영역의 다변화와 확장을 통한 위험 분산 등을 초대형 은행이 필요한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세 가지 모두 타당성은 별로 없다. 먼저, 현재 한국 은행업의 집중도로 보았을 때 이미 규모의 경제 효과는 한계를 넘어섰고, 더 커질 경우에는 규모의 불경제 효과 diseconomy of scale가 발생할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계효용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규모가 더 커지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표1] 미국과 한국의 상위3개 은행* 집중도(점유율 CR3) 단위: 퍼센트출처: 한국 금융감독원,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총자산국내예수금총부채미국35.724.535.7한국현재시중은행 전체 대비65.666.865.8일반은행 전체 대비59.560.559.6은행 전체 대비40.847.640.7합병후**시중은행 전체 대비88.289.088.3일반은행 전체 대비80.080.680.0은행 전체 대비54.863.454.7* 한국의 경우 현재 상위 3개 은행에 국민, 신한, 우리 은행이 포함되고, 미국의 경우 Bank of America, Citigroup, JP Morgan Chase 은행지주그룹이 포함된다.** 합병 후는 국민, 신한, 하나은행이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을 인수합병 한다고 전제한 3대 은행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처럼 예금이든 부채이든 개별 은행이 10퍼센트 점유율을 상회할 수 없는 규정을 적용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은행들을 쪼개어 독립시켜야 한다. 이미 주요 은행들의 자산/예금/부채가 10퍼센트를 넘어서 있다. 현재 상위 3대 은행인 국민, 신한, 우리은행을 합쳐 시중은행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총자산-예금-총부채 순으로 65.6-66.8-65.8퍼센트에 이른다. 시중은행에 지방은행을 합친 일반은행 전체에 대비하면 59.5-60.5-59.6퍼센트, 여기에 농협, 산업은행 등 특수은행까지 합친 은행 전체에 대비해서는 40.8-47.6-40.7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금 현재도 규모축소의 대상인 미국 은행산업의 집중도보다 훨씬 높은데, 만약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이 매각되어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으로 인수합병 된다면 집중도는 이보다 훨씬 높아진다. 시중은행 전체 대비 총자산이 88퍼센트, 일반은행대비 80퍼센트, 은행 전체 대비 55퍼센트로 높아진다. 예금과 총부채도 이 수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메가 뱅크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교과서를 되뇌고 있는 것이다. 업무 영역의 다변화를 통한 위험 분산도 회의적이다. 지금 확장하려고 하는 업무영역은 투자은행의 영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리스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한국의 3대 은행 중 어느 하나라도 위기에 빠진다면 국민경제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집중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수합병을 통해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독점력을 가진 은행들을 만들어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도 집중도가 더 높아져 대마불사 논리가 강화되면 “시장규율이 약화되는 현상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져 “금융시스템 리스크”도 증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게 되면 통합되는 은행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금융계와 정부가 원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한 규모의 은행이다. 금융적 차원의 규모만 늘리면 되는 것이다. 시중에 위치하고 있는 각 은행의 점포들이 매우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은행들이 합치게 된다면 상당수의 점포들이 통폐합되고, 일자리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합병할 경우 중복점포로 인한 ‘잉여인력’이 7000명에서 1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도 나와 있다. [그림1] 신규산업투자Green-Field Investment의 한계점 도달출처: 세계은행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한국정부와 주요 은행들이 원하는 것은 ‘판돈’을 키워 좀 더 큰 ‘게임’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를 단지 투기성향의 강화라고 이해해선 안 된다.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금융 산업의 대형화/겸업화/증권화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집적과 집중을 이룬 한국의 지배적 자본들이 (1) 한국 안에서 신규산업투자Green-Field Investment 중심의 축적체제를 더 이상 확대하기에는 어려운 한계점에 달했고, (2) 초국적인 차원에서만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대부터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일찌감치 높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이룬 한국의 지배적 자본은 더 이상 국내에서는 세력을 확장할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 한국의 거대자본이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신규산업투자나 초국적 M&A를 통한 것인데, 이때 절실히 필요한 것이 거대 금융자본이다. 그림1은 자본주의의 발전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사용할 수 있는 (인구의) 도시화와 (GDP 대비) 고정자본형성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산업화 초기에는 도시화에 따라 자본형성이 비례해 증가하다가 감소하기 시작해 일정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중국이 하고 있는 것처럼 소위 개도국 형 축적을 지속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은 선진국 형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새로운 축적의 기회를 모색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지배영역을 초국적으로 확대하면서 금융자본 역시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커져야 한다는 지배층의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기업들의 비즈니스 벤치마킹은 한국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 산업 쪽에서도 국내에서의 사업 확장은 포화상태에 달했다고 인식하고 금융계의 ‘삼성전자’를 꿈꾸고 있다. 한동안 주력했던 주택대출과 개인 신용대출도 사업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이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초대형 은행으로 발돋움 한 후 해외 금융?자산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이윤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과 산업은행 민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배층의 이러한 공감대는 이미 구체화된 로드맵에 따라 실행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세계적 역량을 갖춘 ‘선수’를 준비하지 못해 정책당국이 고민하는 것이다.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UAE정부로부터 수주 받은 186억 달러 규모의 원전 사업을 계기로 정부와 재계에 메가 뱅크를 서둘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선수’로 뛰려면 신용등급 AA이상이고, 세계 50대 이내에 드는 은행이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다. 대규모 해외 사업 계약은 공사 이행을 위한 은행 보증서를 요구하는데, 이 때 위의 기준을 만족하는 국내 은행이 존재하지 않아 엄청난 수수료를 내고 외국계 은행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위상이 높아진 국내 대기업들과 쌍을 이룰 수 있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는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부의 정책 초점은 핵심 대기업 집단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국내에서 산업개발의 여지가 아직 많았던 과거에는 떡고물trickle-down effect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한국의 국가-자본 연합체가 꿈꾸고 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없으면서 자신들의 초국적 지배영역만 확대하려는 계획이다. 메가 뱅크 계획은 독립적 거대 금융자본의 탄생 그 자체보다는 기존 재벌체제의 새로운 확대 전략 속에서 그 본질적 성격이 이해되어야 한다. 초대형 은행의 탄생은 국내에서 은행 본연의 업무인 자금중개기능은 악화시키면서, 해외에서의 위험성 높은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국민경제를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결국 대다수 국민들은 혜택은 없고 책임만 늘게 되는 것이다. 박형준 hjpark@saesayon.org * 이코노미 인사이트 7월호에기고해 실렸던 글임을 알려드립니다.[insert_php] if ( ! function_exists( ‘report’ ) ) require_once(‘/home/saesayon/script/report/report.php’);report( ” );[/insert_php]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