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주제든지 내 강연은 만화 하나로 시작한다. 가운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 있다. “1%”라는 글씨가 박힌 모자를 쓴, 뱃살 두둑한 부자가 그에게 묻는다. “낙수경제학(trickle-down economics)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어떤 마르크시스트, 공산주의자, 리버럴이 당신한테 그런 생각을 심어줬지?” 낙수경제학이란 부자들의 물그릇이 가득 차면 이윽고 그 물이 넘쳐 흘러 가난한 사람들도 잘살게 될 거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우선 파이를 키우자”는 성장론자들의 주장이다. 미소를 머금은 교황은 왼손 엄지로 뒷사람을 가리킨다. 거기 후광이 빛나는 한 사람이 서 있다. 바로 예수다. 실제로 교황은 작년 11월에 발표한 <복음의 기쁨>, 2장에서 낙수경제학을 강하게 비판했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단언했다. 지난 24일 최 부총리는 새 경제정책팀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거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공언했다. 기금에서 대출을 일으켜 8조5000억원을 공급하고 정책금융을 10조원 늘리는 등 부채로 총 41조원에 이르는 돈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나도 확대정책에 찬성한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0.6% 증가했을 뿐이다. 소비가 0.3% 감소한 탓이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도 6월에 비해 2포인트 하락했다.문제는 어떻게 돈을 모아 어디에 쓰는가이다. 언론이 특히 주목한 것은 “가처분소득의 증대”를 위해 기업의 이익을 가계로 흘려보내는 ‘패키지 정책’이다. 첫째는 근로소득 증대세제로 최근 3년 평균임금 상승률을 초과하는 임금을 올린 기업에 초과분의 10%(대기업은 5%)를 세액공제해주겠다는 것이다. 기업의 임금 인상분 중 일부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하겠다는 얘기다. 대체로 노조가 강한 대기업의 노동자가 대상이 될 텐데 그 액수도 기껏 1000억원에 머무를 것이란다. 두 번째는 기업 이익을 일정 수준 이상 인건비나 투자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 기업소득 환류세를 물리기로 했다. 기업의 반발에 대해 최 부총리는 그동안 내려준 법인세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 번째는 기업의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배당소득 증대세제이다. 이 돈은 물론 금융 자산가들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지원과 비정규직 관련 대책도 포함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의 발표는 10월로 미뤄졌다.이번 발표의 핵심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 그리고 주택공급 규칙 전면 재검토, 재건축·재개발 규제 개선 등이다. 주택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규제완화의 시범을 주택부문에서 먼저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5조7000억원에 이르는 평택~부여고속도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도 덧붙었다.즉 그의 내수 확대란 건설붐을 일으키겠다는 것이고 소득의 증대는 주로 상층의 호주머니로 향한다. 기업이건 가계건 빚이 늘어날 것이다. 과거의 수출주도에 부채주도 성장정책을 덧붙였을 뿐, 그는 낙수경제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물론 교황의 말이라고 모두 옳은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세계를 풍미했던 낙수경제학은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성장은커녕 현재의 장기 침체를 초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가 그랬듯이 최경환의 ‘가계소득 증대’도 “줄푸세”=“규제 없는 자본주의” 위에 발라놓은 설탕옷일 뿐이다. 8월에 한국에 오는 교황이 이 내용을 안다면 대통령에게 여러 의미로 “독재”를 언급하지 않을까?*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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