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가 발효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지겹도록 되풀이한 얘기지만 한미 FTA의 핵심은 무역수지가 아니다. 원래부터 미국의 전략은 상품시장을 열어 주고 대신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시장을 개방하자는 것, 즉 미국만큼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하자는 것이었다. 한미 FTA 발효 전에 정부는 63개의 법령을 제정, 개정했다. 한미 FTA는 정부의 각종 정책에 이미 쓰나미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환경부는 당초 2013년 7월부터 저탄소차 보조금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었다.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소형차 구매자에게 50만~3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배출량이 많은 중·대형차에는 50만~300만원의 부담금을 물리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131∼145g/㎞를 보조금 혹은 부담금이 없는 중립 구간으로 정하고, 그보다 배출량이 많으면 부담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무역대표부는 TTP 가입 선결 요건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저탄소 배출 차량에 대한 보조금은 지금 논의되고 있는 환경규제 중에 가장 강도가 약한 정책에 속한다. 그런데도 한미 FTA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인 정책을 가로막고 있다. 이 점은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정부는 2013년 1월, 한국 정부의 운영 지침>에서 한국 정부와 공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이 한미FTA 위반이라며 개정 요구공문을 발송했다. 한국의 동반성장위원회는 2013년 2월, 외식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미국인 투자자가 있는 기업을 규제한다면 한미 FTA 위반에 해당될 것이다. 정부의 공공정책도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좌절될 수밖에 없다.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 11월 우체국보험의 가입한도를 4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50% 높인다는 내용의 입법예고를 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는 이를 “한·미 FTA에 포함된,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한국의 중요한 약속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증액은 좌절되었다. 물론 지적재산권 분야도 빠지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2년 5월 29일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우리 국방부에 MS의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2000억원대의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했다. 미국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국방부 사이의 저작권 분쟁과 관련하여 한미FTA에 규정되어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동원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같은 분쟁을 예방하고 한-미 FTA이행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2012년 6월 14일 대통령 훈령으로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관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했으며, 이 훈령에서는 공공기관은 반드시 정품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비자·마스터카드를 사용할 때 국내에서 결제해도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이는 연회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제도 개선을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과 비자카드 등이 한·미 FTA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자 대책 발표를 취소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는 서비스산업 규제완화는 한미 FTA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최신판 민영화정책은 공기업의 알짜배기 부분을 분리해서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예컨대 수서 발 KTX 자회사, 병원의 영리 자회사에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 그 자회사는 한미 FTA의 투자챕터의 적용 대상이 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차기 정부는 이 자회사에 손을 댈 수 없다. 바로 악명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 때문이다. 투자자국가제소권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반영해서 여야는 ISD 재협상을 약속한 바 있다. 이미 론스타는 2012년 9월, 대한민국 정부의 양도소득세 3,900억원 과세 처분을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거해서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물론 한미 FTA가 발효된 상태였다면 보복관세 규정이 있는 한미 FTA를 활용했을 것이다. 국내 기업도 ISD를 이용하고 있다. 2012년 10월, 한국의 전력 공기업인 한전이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전기요금 정책에 대해 국제중재 회부(ISD) 가능 여부를 로펌에 의뢰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전에 투자한 미국인 주주를 대리인으로 하여 공공요금을 대상으로 ISD를 활용하려 한 것이다. 한미 FTA의 진정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미 미국식 시장만능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계금융위기가 보여주었는데도 아직도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가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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