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장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진단해 주는 적절한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폭풍이 지나가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평온해진다는 말만 들려준다면, 경제학자들은 너무나 안이하고 쓸모없는 말만 하는 것이다.”경제학자 케인스가 1923년 출간된 화폐개혁론에서 썼던 유명한 구절이다. 지금 유럽경제는 폭풍우가 지나갔는가. 다시 평온해질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르기는 했는가. 또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장기적’으로 유럽 각 국가의 재정수지가 균형을 찾게 될 것이고 무역수지도 조정될 것이며 거품도 꺼지면서 다시 실물경제가 활력을 띠게 될 것인가. 아니면 케인스 말대로 그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추가적 재정정책, 금융정책이 절박한 것인가. 그리스의 채무문제가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9년 가을부터 계산하면 벌써 꽉 찬 4년이 지난 지금,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도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고 이제는 최악을 지났다는 얘기도 꽤 여러 번 나왔다. 한동안 관심이 멀어졌던 유럽경제가 9월22일 치러지는 독일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다시금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킬 시점이다. 마침 유로존의 올해 2분기 경제가 예상을 깨고 7분기 만에 플러스 0.3% 상승했다고 해서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플러스 성장을 했다. 제조업지수를 포함한 몇 가지 경기 선행지수 지표들도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들어서는 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심각한 위기 재연 조짐이 재발하지도 않았다. 한때 유로존 해체까지도 거론됐던 유럽의 경제위기는 정말 최악의 상황을 넘어선 것인가. 이제는 조심스럽게 회복을 말해도 되는 것일까.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선진국 경제의 극히 저조하고 불안한 상태조차도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로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라고 하는 ‘예외적으로 길어지고 있는 예외적 수단’으로 인위적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적완화를 미국의 경우 2008년 12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미 세 차례나 실시했고, 그 사이 수조 달러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시중에 풀려나갔다. 미국은 2010년과 2011년, 그리고 지난해 여름에도 양적완화를 종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경제가 흔들리면서 지금까지 양적완화를 연장해야만 했다. 특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 번째 양적완화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돼 기한을 정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경기회복세가 괜찮다고 하는 미국마저도 양적완화를 언제 그만두고 스스로 경제가 작동하게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부터 주요 선진국 경제권인 미국·유럽연합·일본이 동시에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던 일이다. 20년 장기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일본이 경기부양과 수출을 위한 엔화 평가절하를 목표로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고 올해 아베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단히 공격적인 양적환화 정책에 돌입했다. 그 결과 달러당 70엔까지 올랐던 엔화 환율은 100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유럽위기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자 그동안 회피하던 회원국 국채 무제한 매입을 결정해 시행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고비를 넘나들던 남유럽 위기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허약한 세계경제조차 스스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들의 어마어마한 뒷받침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또 하나 있다. 유로존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유로존 17개국 실업률은 현재 12.1%로 가장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 청년실업률도 24% 전후의 최고점이다. 올해 5월 기준 그리스(62.9%)와 스페인(55.8%)의 청년실업률은 지금 유로지역의 경제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준다. 심지어 1년 이상 장기 실업률이 그리스와 스페인 모두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그리스는 14.4%, 스페인은 11.1%였다. 유로지역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장기화’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유럽경제가 ‘장기적’으로 자동조절되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것도 명확히 알려 주고 있다.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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