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을 꽉 메운 인파, 또다시 촛불이 일렁거린다. 연단에 오른 민주당 의원들이 8일 발표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맹공한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대로 “월급쟁이 434만명(전체의 28%에 해당)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 그야말로 오만한 박근혜 정부 아니면 불가능한 세제개편안”이라는 것이다.이번 개정안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이 정도로 세수를 확대해선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맞춤형 복지’를 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27조원가량이 더 필요한데 이번 세법 개정으론 고작 2조4000억원 정도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하지만 나는 이번 세법개정안 방향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보편복지를 하려면 언젠가는 중산층의 소득세도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보편복지는 이른바 ‘공유지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공급 쪽의 무임승차(남들보다 세금을 덜 내야 한다)와 수요 쪽의 무임승차(‘공짜 복지’를 되도록 많이 이용해야 한다) 유혹은 보편복지로 가는 길에 솟아오른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 딜레마는 “모두 내고 모두 누린다”는 보편의 원칙을 공정하게 적용해야만 해결된다. 이번 개정안은 공정성이란 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했지만 보편성이라는 면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을 세금폭탄이라고 폄하하는 대신, 어려운 서민들이 세금을 더 내는데 부자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공정한 게 아니냐고 설득해야 한다.즉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시대’를 열려고 한다면 당장 법인세와 자산세를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되돌리고 경제사정이 나아진다면 ‘부자증세’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유리 지갑을 가진 월급쟁이들도 이번 조치에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연구개발비 세액 공제, 고용창출 투자세액 공제 등 대기업에 주는 4조4000억원의 특혜를 없애기는커녕, 사실상의 재벌 상속인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중과세를 대폭 후퇴시켰다. 기획재정부 김낙회 세제실장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경영 효율화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댔다. 투자자를 업어주는 부총리에 이어 대통령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고위 공무원이 또 하나 탄생했으니 앞으로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앞다퉈 이 모범을 따를 것이다.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복지’를 사실상 전담할 중산층 사정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장기침체와 저금리로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단기 대책은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현오석 부총리는 “시장 반응을 살펴보면 공급이 줄어 오히려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단기에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은 발생할 수 없다(수직의 공급곡선). 전·월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고 아예 집을 놀리겠다는 다주택 소유자가 얼마나 될까? 물론 장기적으로는 임대 목적의 주택 건설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야말로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패러다임 전환’, 즉 주택 공급의 축소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왜 부총리와 장관의 말이 어긋나는 것일까? 주택 공급 축소로 가격이 오를 것이니 중산층에게 빚을 내서라도 지금 집을 사라는 국토부 장관, 그리고 주택공급 축소가 걱정돼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할 수 없다는 부총리의 공통점은 오로지 하나, 부동산부자들과 건설업자의 현재 이익을 도모하는 것뿐이다.대통령 취임 6개월이 막 지난 지금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는 확정됐다. 투자수요를 늘리기 위해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의 산지규제 완화 등 ‘푸’(규제를 푼다)는 재벌과 부동산 자산가들에게 베푼다. 이명박 정부가 이미 실천해 버린 ‘줄’(세금을 줄인다) 대신 중산층의 세금을 ‘늘’린다. KTX나 가스공사 민영화(역시 ‘푸’) 역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는 데 사용한다.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불만, 그리고 촛불에 대해서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즉 ‘세’, 법질서를 세운다)하면 된다. 부자들은 ‘줄푸’를 누리고 중산층 이하는 ‘늘세’를 감당하는 것이 우리들의 ‘국민행복시대’다.* 이 글은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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