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기술혁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많이 거론됐던 ‘지식기반 경제’나 노무현 정부 시절의 ‘혁신 주도형 경제’도 다르지 않았다. 흔히들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본이나 노동력 같은 요소투입형 경제성장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취지에서 혁신을 강조하게 되면 예나 지금이나 반론의 여지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혁신 주도형 경제가 지나치게 공급측면에만 초점을 둘뿐 수요측면에 대한 고려가 적다는 점은 일단 여기서는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모든 혁신은 경제와 사회에 이로운 것인가. 마땅한 부존자원도 없는 어려운 여건에서 선진국을 추격해야 했던 우리에게 이 질문은 던질 가치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 말대로 이제 추격을 넘어 선도를 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은 던져 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지난 20년 동안 가장 두드러진 혁신사례 두 가지를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금융혁신’과 ‘IT혁신’을 꼽지 않았을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문자 그대로 ‘대량 살상무기’로 확인된 파생금융상품은 사실 이제까지 금융공학이 이뤄 낸 혁신의 꽃이자 금융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준 발명품으로 칭송받았다. 73년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와 피셔 블랙(Fischer Black)이 완전금융시장에 대한 이론적 가정하에 옵션가격 모형(이른바 블랙 숄즈 모형)을 개발한 이래 파생상품은 최고 난이도의 공학적 뒷받침을 받는 최고의 혁신상품으로 대접받았던 것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요약한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여러 해 전부터 미국 최고의 인재들은 금융업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고, 갈수록 이 비율이 높아졌다. 수많은 인재들이 금융업에 몰려 있으니 그 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룬 금융혁신 중 대다수는 규제를 피해 갈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고, 실제로 장기적인 경제성과를 위축시켰다. 이런 금융혁신은 인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트랜지스터나 레이저 등의 진정한 혁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스티글리츠는 트랜지스터나 레이저 같은 진정한(?) 혁신과 대조시켰지만 사실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던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금융혁신이 IT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이 없었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90년대 이래 쏟아진 엄청난 파생상품들과 금융혁신은 이들 상품 설계에 필요한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해 주고, 이들 파생상품을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24시간 밀리 초 단위로 거래하게 해 줄 정보시스템의 혁신에 의해 비로소 현실화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 경제분석가인 마틴 울프(Martin Wolf)는 이렇게 지적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금융거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금융자산을 24시간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 기반의 새로운 위험관리 모델은 많은 금융부문에 도입됐다. 오늘날 금융부문은 정보기술 혁명의 가장 강력한 수혜자다.” 이처럼 금융혁신이 주도하고 정보통신 혁신이 밀어주면서 굴러 온 20여년 동안의 ‘혁신 수레바퀴’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대침체를 일으키게 됐던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이들을 인류를 힘들게 했던 혁신, 나쁜 혁신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모든 혁신이 좋은 것’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그런데 70년대 이래 금융부문에서 앞에 예시한 그런 혁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블랙 숄즈 옵션 가격모형이 개발되던 73년, 방글라데시의 경제학 교수였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작은 마을의 여성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라민 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 구상을 시작하게 된다. 유누스가 착수한 혁신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담보도 없고 신용등급도 낮을 수밖에 없어 일반적인 은행시스템으로는 대출이 안 되는, 하지만 어쩌면 가장 돈이 절박하게 필요한 서민들에게 담보와 신용보증 없이 150달러 미만의 자금을 낮은 금리로 장기간 대출해 주는 혁신적(?)인 사업구상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원리금 상환이 안 돼 망했을까. 정반대다. 원리금 상환률은 무려 98%였다. “현재 그라민 은행에서 대출받은 870만명 가운데 60%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방글라데시 내에서 운영 중인 그라민 은행 지점은 2천개 이상이며 1만8천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적인 ‘무담보 소액대출’ 프로그램은 이제 세계 60여개국에서 실행되고 있다.”(이승은 ‘되살린 미래’)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혁신은 끝없는 첨단을 추구한다면서 불평등과 위험을 확대하는 그런 혁신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혁신이 아닐까. 이처럼 좋은 혁신과 나쁜 혁신은 구분할 수 있다.* 이 글은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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