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재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했다. 경제민주화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고용률 70%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줘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은 없고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불법도급 행태만 밝혀져서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 목표 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고민하기 전에 재벌들의 잘못된 고용관행부터 시정해야 할 판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재벌들의 고용에 대한 흥미 있는 내용이 언론에서 보도됐다. 머니투데이 6월10일자 기사에 따르면 4대 그룹의 전체 고용인원은 94만1천명이라고 한다. 4대 재벌 총 계열사 286개 기업이 총 취업자의 3.8%를 정도를 감당하는 것이니 이 정도면 제법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우선 재벌그룹의 계열사가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훨씬 더 많은 계열사가 해외에 있다. 4대 그룹의 해외계열사는 1천140개이니 국내 계열사 전체의 4배에 달한다. 그래서 결국 94만1천명의 직원 중 40%가 넘는 37만8천명이 해외 종업원이라는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빠르게 해외고용이 늘었다. 그 결과 4대 재벌그룹 전체가 책임진 우리나라 고용인원은 56만3천명이고 전체 취업자의 2.2%로 떨어진다. 삼성전자는 이미 2011년 해외고용 인원이 국내고용을 앞질렀다. 전체 삼성전자 종업원 22만명 가운데 12만명이 해외 종업원이다.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고용만 늘린다는 비판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의 지방·중앙정부는 한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토지 무상임대와 법인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재벌 특혜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에 시달려 국내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재벌개혁은 고사하고 재벌을 위해 규제를 더 풀어 주고 인건비를 더 내려가게 해주고 세금을 더 깎아 주면 국내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물론 개별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아주 합리적이고 그럴듯하게 들린다. 기업은 이윤이 큰 쪽으로 투자하기 마련 아닌가. 베트남 노동자의 월급은 30만원 정도로 국내 인건비의 10분의 1 수준이고 더욱이 투자 초기에는 세금도 면제해 준다는데 삼성전자가 당연히 베트남에 투자하고 베트남인을 3만명씩 고용해도 탓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한두 개 기업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그렇게 움직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지금은 마치 자연법칙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렇게 주권국가들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어 자본이 투자를 할 수 있었던 환경이 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영향이다. 지금 자본은 세계화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국경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돌며 더 낮은 비용과 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곳을 자본 마음대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는 점점 더 규제를 풀고 감세를 하고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해 왔다. 그 지구적 결말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침체다. 개별 기업들의 이기적 이익추구가 해당 기업의 수익률을 극대화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로서의 세계경제는 규제완화·감세·노동시장 유연화의 종합적 결과로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사실 중소기업들은 개별적 이익만을 취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다르다.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과 한국의 재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이기적 이해타산만을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노동이 높은 임금과 최고의 복지를 찾아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본은 전혀 이동할 수 없고 노동력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각국은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려고 경쟁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적게 거두겠으며 좋은 학교, 좋은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할 것이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자본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서 거둔 수입으로 충당될 것이다.”(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 스티글리츠는 덧붙인다. 실제 미국의 건국 초기에 이런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막 생겨나기 시작한 미국의 신생 주들이 동부해안의 기존 주들과 주민확보 경쟁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전국적으로 투표할 권리, 공직에 출마할 권리, 공교육을 받을 권리가 확산됐다고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이런 결과는 다시 미국의 민주주의와 인적, 기술적 잠재력을 키우고 기업에게도 긍정적인 결과가 됐을 터였다. 자본의 세계화, 아니 자본만의 세계화가 세계의 복리가 아니라 자본만의 복리를 가져올 뿐이라면 마땅히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해외 생산기지로 이전하겠다는 협박 따위는 국민의 이름으로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고용률 70%라는 불가능한 목표도 달성하고 경제민주화도 하려면 박근혜 정부가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이 글은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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