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읽었던 <세개의 화살>은 일본 이야기였다. 16세기 다이묘 모리 모토나리는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하루는 모리 모토나리가 이들에게 화살 하나씩을 나눠주고 부러뜨리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쉽게 아버지의 명을 따랐다. 그러자 세 개를 한 묶음으로 주면서 분질러 보라고 했다. 이번엔 모두 실패했다. 협동과 단결을 강조한 얘기다. 아베 총리의 세 개의 화살은 이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금융정책, 확대 재정정책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이요, 지난 5일 발표한 ‘성장전략’이 마지막 화살이다. 이 화살들을 각각 쏘면, 지난 20년간 일본의 경제정책사가 말해주듯 별로 효과가 없겠지만 한꺼번에 쏘면 시너지효과가 날 것이란 얘기다.지난번에도 쓴 일본 얘기를 또 끄집어낸 것은, 변덕 심한 일본 주가 때문이 아니다. 틀리든 맞든 논리의 일관성을 지켜야 할 한국의 언론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4월23일 “한국, 늙은 일본에 경제활력 역전당했다”며 아베노믹스를 격찬했다가 5월28일에는 “요동치는 아베노믹스… 금리 위기에 은행 문의 쇄도”라는 제목으로 아베노믹스는 “근본적으로 모순이고 회의론이 비등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런 조선일보의 태도를 비판한 프레시안은 “아베노믹스, 구조개혁 없이는 실패할 운명”이라는 보수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를 예견한다는 건 분명 도박이지만 아베 총리가 세 번째 화살을 효과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일본경제가 완전히 파산할 것이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아베의 모든 정책은 2%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맞춰져 있다. 일본은 깊은 디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졌다. 물가가 떨어지면 현재의 제로금리도 실질로는 플러스가 된다. 투자는 위축되는데 그동안의 실질임금 하락과 고령화로 소비도 늘어날 수 없었다. 하여 크루그먼은 이미 15년 전에 4%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 5월23일에는 뉴욕 타임스에 ‘일본이 모델’(Japan the Model)이라는 글을 실었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풀려난 돈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고 실물 투자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케인스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남은 것은 그 반대편의 ‘피구효과’이다. 그런데 젊은 층의 임금은 계속 떨어지는 상태이고 정작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노년층은 별로 소비를 늘리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풀려난 돈은 어디로 갈까? 인플레이션 없이 자산버블만 일어날 수도 있다(현재 일본의 필립스 커브는 수평선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무한정 사들인다 해도 최근 몰려든 외국인 투자자가 내다 팔기 시작하면 장기금리가 급등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 일본을 지탱해 온 수출마저 세계적 불황으로 여의치 않아 일본은 1980년대 이래 최초로 무역적자를 기록했다.진정한 문제는 세 번째 화살에 있다. 핵심은 개방과 규제완화이다. 도쿄를 세계의 금융중심지로 만드는 국가전략특구의 설치, 의약산업과 전력산업의 규제 완화에 의한 투자 유도가 그것이다. TPP를 통한 개방을 합치면 그것이 바로 아베노믹스의 비판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구조개혁이다. 그리고 이런 시장만능주의의 실패는 이미 증명됐다.정작 일본에 필요한 것은 정반대로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가 내린 처방이다. 소득과 자산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으면 일본의 내수가 살아날 길은 없다. 특히 일본에서는 노년층의 부가 청년층으로 이전되지 않으면 안된다. 후쿠시마의 기억을 밑천으로 삼아 대대적인 에너지체제 재편을 한다면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일본의 빗나간 화살은 한국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일 중국까지 침체에 빠진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나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사실상의 ‘줄푸세’까지 겹치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 글은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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