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계약대로라면 편의점은 프랜차이징보다 노예라고 보는 게 낫다. 가맹본부는 실패의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가맹점을 모집했다. 불공정을 넘어 계약 자체가 사기다.지난 5월20일 월요일 오랜만에 국회에 갔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 ‘민주당, 경제민주화 더 잘할 수 없는가?’의 사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이슈는 이른바 ‘갑을 관계’다. 대기업 임원의 비행기 난동부터 시작해 대리점, 편의점 등에서 점잖게 얘기하면 불공정 행위, 정확히 이야기해서 착취나 수탈이 속속 폭로되고 있다. 급기야 편의점주 4명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오죽 희망이 없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청년 편의점주’ 오명석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1979년생, 그러니까 이제 만 서른네 살이다. 그의 아버지는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오씨는 아버지의 은퇴 자금으로 편의점을 냈다. 그에 따르면 “정말 이 편의점이라는 것은 대기업에서 바다에 던진 그물에 우리 같은 IMF 세대가 걸려들기 딱 좋게,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대기업들은 아버지를 해고하면서 던져준 퇴직금마저 아까워 본인 또는 그의 자식을 통해 회수하려 했던 것일까? 아들은 5년 계약으로 편의점을 시작해서 처음 2년은 그런대로 장사를 했지만 본사가 바로 옆 자리에 또 다른 편의점을 내는 바람에 4년째 되는 해 폐점을 신청했다. 그는 위약금 2500만원에 철거비 300만원까지 낸 후에야 장사를 접을 수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자살하고 말았다. 편의점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프랜차이징에 속한다. 보통 가맹본부(프랜차이저)는 기본 시스템(재고관리·창고·회계정보·포스시스템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랜드를 제공하고 가맹점주(프랜차이지)는 점포에 대한 투자와 자신의 노동으로 매출을 올린다. 창업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퇴직자들, 그리고 청년 실업자들에게는 ‘맨땅에 헤딩하기’보다 훨씬 덜 위험한 사업으로 보였을 텐데 본부는 ‘무조건 500만원 수익 보장’ 식으로 이들을 유혹했다. 실제로 그렇게 수익이 난다면 왜 본사는 직접 편의점을 운영하지 않는 것(직영)일까?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수직통합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경제학에서는 대리인(여기서는 편의점주)의 감시가 어렵거나(대리인 이론), 대리인이 본점에 발목 잡히는 것(이른바 홀드업 문제)을 꺼려 자산특수투자를 하지 않으려 하거나(거리비용 이론), 계약에 명시할 수 없는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불완전계약 이론) 수직통합을 한다. 경제학을 공부하지만 기업이론에 대해서는 내가 거의 문외한에 가깝기 때문일까? 이들 이론으로 한국의 프랜차이징 실태를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가맹점주는 현재 수익 비율(예컨대 어떤 증언에 따르면 수익의 65%)에 따라 얻는 이익이 100만원이라면 이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처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여지도 없어 보인다. 편의점 협동조합을 상상하라현재의 계약대로라면 프랜차이징이라기보다 노예라고 보는 게 낫다. 가맹본부는 오로지 점포를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뽑아내고 사업 실패의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가맹점 모집을 했을 뿐이다. 편의점주들의 투자는 잠긴 비용이 되어 노예로 묶여 있게 만든다. 이런 계약은 약자가 일방적으로 발목이 잡힌 경우이므로 불공정을 넘어서 계약 자체가 사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처방대로 가맹사업법을 개정하고 공정위의 조사를 강화한다면 한결 나은 상황이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만일 폐점 비용을 줄여준다면 거의 모든 편의점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런 거버넌스(체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가맹본사의 기본 시스템 투자를 편의점주들 스스로가 할 수만 있다면, 또는 기본 시스템을 사들일 수 있다면 경제적 효율성 면에서도 훨씬 더 나을 것이다. 편의점의 수익도 늘어나고 투자와 노력도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편의점 협동조합이 탄생하는 것이다.편의점주의 단결권이나 교섭권을 허용한다면 동시 폐점이나 휴업을 무기로 삼아서 계약 조건을 개선하거나 아예 시스템을 사들일 수도 있다(필요하다면 그 자금을 대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울 수도 있다). 만일 편의점이 동시에 폐점하기로 결의한다면 이제 본사의 기존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그런 구실을 했듯이 약자의 힘을 키우는 것이 효율과 평등을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다. * 이 글은시사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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