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처럼 협동조합의 기적도 이룰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권위자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가 한국 방문단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지금 우리나라에 부는 협동조합 열풍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도 남을 정도다. 협동조합, 한강의 기적 이룰까?기획재정부에 의하면 현재 설립 신청을 한 협동조합의 수가 850여 개에 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향후 10년 안에 서울에 8000개의 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지자체나 시민단체, 대학들에서는 다양한 협동조합 강좌들이 열리고 있으며, 강의마다 빈 자리를 찾기 어렵다. 2011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고, 2012년 12월 이 법이 발효되었으니 불과 2년 만의 변화이다. 협동조합이 대체 뭐길래 그럴까?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하면 5명 이상이 모여서 출자금을 납부하고 정관을 만들어 신고하면 협동조합이 된다. 기존의 개인사업체나 법인이 아닌 또 다른의 형태의 사업체 설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5명이 주식을 투자해서 만든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협동조합은 일반기업보다 착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출자금, 정관 등의 형식을 넘어서 협동조합이 가진 근본적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일반기업과 협동조합의 근본적 차이는 자본과 노동의 고용관계에 있다. 일반기업의 경우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형태이다. 사장님이 자기 돈으로 회사를 차리고 직원을 고용한다. 혹은 주주들이 자본을 댄 후 경영자와 직원을 고용한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형태이다. 협동조합의 자본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부터 나온다. 조합원, 바로 노동이자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것이다. 이는 곧 누가 기업의 주인인가라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일반기업에서는 자본이 주인이지만, 협동조합원에서는 조합원이 주인이 된다. 협동조합이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기업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기업의 수익을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할지가 달라진다. 일반기업에서는 수익이 발생하면, 주인인 자본가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매출이 증가하면 주주들의 배당금이 높아지거나 사장님이 부자가 되는 식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수익을 사용한다. 소비자협동조합이라면 조합원인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수익을 사용한다. 생산자협동조합이라면 조합원인 생산자들이 납품한 물건을 좋은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수익을 사용한다. 노동자협동조합이라면 조합원인 노동자들의 임금상승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수익을 사용한다. 금융협동조합이라면 조합원인 고객들에게 더 낮은 대출금리와 더 높은 예금금리를 제공하기 위해 수익을 사용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 공동체 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면 그러한 목표를 위해 수익을 사용한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수익이 아니라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것, 조합원이 합의한 가치를 추구하는 ‘착한’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이 주인인 일반기업에서는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목표는 수익극대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없다. 노동자가 주인이고, 소비자가 주인이고, 지역 공동체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협동조합그룹이다. 1956년 5명의 창립자에 의해 설립된 난로공장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200개가 넘는 기업을 산하에 두고 있는 거대 그룹이다. 현재 스페인에서 매출 기준으로 7위이며, 9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같은 재벌인데, 그 재벌이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몬드라곤의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다. 가난했던 지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지금도 그 목표를 충실히 실현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몬드라곤 역시 위기를 맞았고 약 8000명의 일자리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삼성과 같은 일반기업이었다면 8000명의 정리해고가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몬드라곤은 8000명의 직원에게 평소 임금의 80%를 지급하며 휴직을 시켰다. 그리고 교육과 훈련, 창업을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왜냐하면, 몬드라곤의 목표는 수익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이다. 해고없는 기업이라는 몬드라곤의 신화는 철저히 협동조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합원이 주인이며, 그래서 수익이 아니라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목표라는 점. 이것이 협동조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내용이다. 이런 근본 특징으로부터 모든 조합원들이 출자금의 규모에 상관없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으며, 조합원의 투표를 통해 이사회나 경영진을 선출하며, 투자배당이 아니라 이용고배당을 실시한다는 협동조합의 운영 원칙들이 나오게 된다. 투자배당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식에 대한 배당처럼 투자한 자본에 대해 수익을 배당하는 방식이며, 이용고배당이란 협동조합을 이용한 정도에 따라 수익을 배당하는 방식이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경우는 소비를 많이 한 조합원일수록, 생산자 협동조합의 경우는 생산을 많이 한 조합원일수록 높은 배당을 받는 것이다.이러한 협동조합의 특징을 담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는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조합원의 참여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이다. 둘째,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셋째, 경제적으로 공동 소유하고 공동 이용한다. 넷째,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다섯째, 조합원과 일반대중에게 교육과 훈련 및 정보를 제공한다. 여섯째, 협동조합끼리 서로 협동한다. 일곱째,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시장 경제 속에서 협동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공통의 가치를 추구하고, 조합원들끼리 협동하고, 신뢰하고, 연대하다니! 확실히 협동조합은 수익, 효율, 경쟁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경제와 다른 원리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그게 과연 가능할까?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면 말했던 경제는, 모두가 제 이기심을 충실히 따르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장 이로운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이를 시장경제라 부른다. 여기에는 가치, 협동, 신뢰, 연대 등의 ‘착한 것’들이 낄 틈이 없다. 아담 스미스의 말대로 인간이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협동조합은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일까? 여기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다. 이제 A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눠가지도록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주고 싶은 만큼 제시할 수 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다. 단, B가 A의 제안을 거절하면 두 사람은 모두 한 푼도 갖지 못한다. 당신이 A라면 얼마를 제시하겠는가? 당신이 B라면 A가 얼마를 제시했을 때 제안을 수용하겠는가? 만약 시장경제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라면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 A는 1원을 제시하고, B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A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소한의 금액인 1원만 주는 게 이기적인 행위이다. B의 입장에서는 A의 제안을 거부해서 한 푼도 못받는 것보다는 1원이라도 받는 게 이익이다.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면…하지만 전 세계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들이 위 실험을 수도 없이 반복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대체로 A는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하고, B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만약 A가 욕심을 부려 2000원 이하의 금액을 제시하면, B는 이를 거절하고 차라리 한 푼도 받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 결과는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인간은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남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반발한다. 협력과 응징을 통해 남이 나에게 하는 만큼 나도 베푼다는 것이다. 가장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이를 상호적 인간이라 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인류의 오랜 고전인 성경과 논어에서도 이를 황금률이라 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마라” – <논어> 12편특히 최근에는 생물학이나 진화학에서도 이런 상호성이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호적이고 따라서 협동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몇 백만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역사 대부분을 인간은 상호적으로 행동했다. 다만 최근 300년 동안,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압도했던 특히 지난 30년 동안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주장이 득세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반론을 제시했다. A가 4000원이 5000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까닭은 혹시 B가 그 제안을 거절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A의 결정은 이기적이며, 시장경제가 상정하는 이기적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또 하나의 실험을 했다.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다. 앞서 진행한 최후통첩게임과 똑같이 진행하되, 다만 B에게서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 즉, A가 어떤 금액을 제시하더라도 B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건 너무나 쉽다. 만약 A가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B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험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역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A는 2000원에서 3000원을 B에게 나눠 주었다. 앞의 최후통첩게임 결과와 비교 해보면 나눠 주는 금액이 2000원 정도 줄기는 했다. 줄어든 2000원은 경제학자들의 반론처럼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마음의 크기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2000원에서 3000원의 금액을 결정권이 없는 사람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행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분명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오히려 대체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이 아담 스미스 이후 300년 역사 동안 절대적인 가정으로 삼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으며 상호적이라는 사실에서 경제는 착해질 수 있고, 협동조합과 같은 기업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 ‘착한 경제’를 사회적 경제(시장경제를 시장적경제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적 경제보다는 사회경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나, 국내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어 읽는 이에게 익숙한 용어라는 점을 고려하여 사회적 경제라 표기한다)라 한다. 인간의 상호성을 전제로 한 사회적 경제시장경제가 개인의 이기심을 전제로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경제는 개인의 상호성을 전제로 협력을 통해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보다 더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해왔다. 원시부족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식량 공유의 습관이 대표적이다. 시장경제는 19세기에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야 우리 곁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제라고 하면 시장경제가 전부이며, 경제활동은 당연히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욕심과 경쟁을 강요하는 시장경제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사람들의 놀라운 관심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의 개념에 대해서 조금 더 정리해보자. 학문적이고 정책적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곳은 프랑스였다. 1800년대 후반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대규모 도시노동자가 양산되었고, 이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의 집단 대응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경제사상가 샤를 지드(Charels Gide)는 ‘시장경제를 더 사회적이고, 공평한 체제로 전환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제시했다. 이런 실용주의적 입장과 함께 생시몽(Saint Simon)이나 푸리에(Fourier)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사회, 경제적 목적을 지닌 협동조합을 정치적 도구로 삼아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01년에는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이 프랑스에서 법적 인정을 받았다.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기침체와 실업으로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위기에 처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가 유럽 전체에 퍼져나갔다. 시장과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개인들의 자발적 공동체가 나서게 된 것이다. 1989년에는 유럽위원회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공통적으로 시장과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며, 자발적이고 민주적이며, 전체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지향하는 경제라는 점을 포함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경제 안에는 어떤 기구들이 포함될까? 대체로 경제적 목적(수익 창출)과 사회적 목적(구성원이 합의하는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구로서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포함된다. 나라에 따라 경제적 목적은 전혀 추구하지 않은 채 사회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자선단체나 비영리 단체까지도 사회적 경제 안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등장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대표 사례이다. 사회적 경제가 가져올 수 있는 미래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경제는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우리가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논리만을 강요해서 생겨나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사회운영원리를 좀 더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은 주춤하지만 지난 대선을 최고점으로 하여 경제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을 개혁하고 규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까지 재벌이 차지해왔던 자리를 새로운 경제주체가 메워주어야 한다.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대안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가 그것을 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벌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 시장을 중소상인과 중소기업에 돌려주는 경제민주화 역시 협동조합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골목까지 들어오는 재벌들의 빵집이나 대형마트에 대항하기 위해 동네 슈퍼 협동조합이나 동네 빵집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협동조합은 그 자체로 소유와 경영에 있어서 민주적이며, 지역과 공동체를 고려하는 공동선을 추구한다. 협동조합이 확산될수록 우리는 그러한 기업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시장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복지를 수익성만 추구하는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정부의 복지체계를 지역 구석구석까지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조직은 지역에 뿌리박은 민간 조직이면서, 수익성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마지막 의료서비스 전달(1차 진료)을 의료생협이 맡는 것이다. 지역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국가의 관료조직을 타고 내려오는 의료서비스보다 지역 주민들이 만든 의료생협을 통한 의료서비스가 훨씬 더 적절하다. 꼭 이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우리 동네에서, 지금 나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협동조합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동네에 마을버스가 필요하다면 마을버스 협동조합을 만들자. 지역신문이 필요하다면 지역신문 협동조합을 만들자. 어린이집이나 대안학교를 만들 수도 있다.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가 많이 생길수록 우리사회 전반에 깔리는 운영원리 또한 경쟁이 아니라 협동으로 변화할 수 있다. 서두에 소개했던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상상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며, 때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막연하게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경제는 원래 그런 거야 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 그 벽을 깨고 새로운 사회를 그려보자. 우리에게는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물감이 주어졌다.* 이 글은 가톨릭대학교 교지 ‘성심’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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