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봄은 우리 사회의 유력한 세력들이 저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시기로 기록될 것 같다. 오직 재집권을 위해 자신들의 보수적 노선도 버리고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를 내걸었던 새누리당이었다. 집권한 지 100일도 안 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버리고 친기업 행보와 ‘줄·푸·세’ 정책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줄·푸·세의 배경이 됐던 신자유주의는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무너지고 있는 중이고 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되돌아갈 것인가. 그러니 뜬금없는 ‘창조경제’만 허공에 메아리치고 있지 않은가.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과거 진보정당 구호였던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반값등록금(3무1반)을 전면에 내세우고 경제민주화 의지를 불태우며 과감한 좌클릭 행보를 했던 제1 야당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이후 다시 우클릭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반공체제 아래서 오직 반독재 민주화라고 하는 정체성에 기대어 야당으로 60년 명맥을 이어 왔으니 하루아침에 사회경제 민주주의 세력, 복지세력으로 탈바꿈하기는 어렵다는 것인가.무상의료 무상교육 원조정당으로 자타 공인된 진보정당들도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내부 분열로 혼란에 빠져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줬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보수 양당의 우클릭 경쟁에 일침을 가하고 민심의 소재를 재확인시켜 줘야 할 진보정당의 역할이 절실한 지금이지만,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다. 더 나아가 진보정당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고 어려운 모색의 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진보정치의 정체성이 불투명하게 된 데에는 사실 지난 20년간 진행된 노동자들의 급격한 환경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조직력 약화와 노동자들의 이념과 정치노선의 문제도 있었다. 지금의 진보정당은 사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이름하에 노조들이 대거 기반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자들이 서 있는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끊임없이 반추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임금노동자는 1천770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약 72%에 해당한다. 87년 900만 노동자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 역량이 두 배가 됐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조직노동자가 오히려 줄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체 규모는 커졌지만 노동자 내부 구성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 1천770만 노동자는 전혀 균질적인 집단이 아닐 뿐 아니라 내부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특히 제조업 노동자가 전체 취업자의 16.6%에 불과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민주노총 역량의 뿌리가 된 80년대 말 노동운동 전성기에는 그 비중이 26~27%를 유지했다. 울산과 창원, 인천과 안산 등 주요 공단의 대기업·제조업·생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 핵심역량은 그런 환경에서 형성됐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 비중이 20% 미만으로 축소됐고 이제는 공공과 교육, 보건·복지 분야 노동자수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결국 제조업 대공장 생산직이 최고점에 이를 어느 특정한 순간을 반영해서 나온 노동운동 역량이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이뤘다고 할 수도 있다.이러한 산업구조 변화와 함께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의 확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가 중첩되면서 노동조건과 임금을 둘러싼 노동자 내부의 지위변화가 서서히 발생했다. 예를 들어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체 산업 대비 제조업 임금이 처음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중소기업 임금은 90년대 초에는 대기업의 8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비중이 축소된 거대 산업지대 대공장 생산직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자들이 주위 곳곳에, 시민들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숫자가 87년의 두 배에 이르게 된 것이다.최근 TV에서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 김과 정리해고를 당해 쓸쓸히 짐을 싸는 ‘정 과장’이 화제가 됐다. 그런데 미스 김과 정 과장은 사실 우리 주위에, 시민들 속에 묻혀 있던 노동자들의 한 단면을 드라마 기법으로 살짝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참담한 직장의 노동현실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과거의 경험과 과거적 이론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존재하는 노동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1천770만을 대표하는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되면 진보정치의 정체성도 다시 분명해질 수 있지 않을까.*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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