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면서 해외모델로 꼽은 나라가 이스라엘과 핀란드였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추정일 뿐이다. 이번 정부는 정책이든 인사든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근거가 애매한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오직 대통령의 수첩 속에 인사와 정책의 근거가 숨어 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여하튼 이전에는 금융허브를 일군다면서 아일랜드를 모델로 내세우기도 했고 사막 위의 기적이라고 하던 두바이가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국이 롤모델로 치켜세웠던 두 나라 모두 경제위기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주저앉은 것도 아이러니다. 인구 500만명의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와 인구 750만명의 중동 전쟁국가 이스라엘을 꼽은 것은 IT기술 중심의 벤처창업 활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를 만든 벤처기업 로비오(Rovio)가 있는 나라가 핀란드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간편하고 안정적인 연료 충전과 값싼 전기자동차 공급”이라는 모토로 세계 1위 전기자동차 네크워크 제공업체가 된 베터 플레이스(Better Place)는 이스라엘 벤처기업이다. 특히 두 나라 모두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IT 벤처의 성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두 나라는 우리와 또 다른 측면에서 유사하다. 재벌 또는 거대 기업의 경제력 집중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참여정부 말까지만 해도 국내총생산 대비 국내 5대 그룹 매출액 비중이 43%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재벌의 성장은 경제성장 속도를 훨씬 추월해 지금은 매출액 비중이 63%까지 팽창했다. 그 절반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가져간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괜히 나온 주제가 아니다. 그런데 재벌의 독식이라면 이스라엘도 우리나라 못지않다. 최대 통신재벌인 IDB그룹과 에너지재벌인 델렉(Delek)그룹을 주축으로 상위 6대 재벌그룹의 매출액이 2010년 기준 이스라엘 전체 GDP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재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경제력 집중이다. 때문에 아랍의 봄이 휘몰아쳤던 2011년 여름,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수십만 명이 시위에 나서면서 재벌개혁을 요구했고 결국 지난해 이스라엘 정부는 강도 높은 재벌개혁안을 확정했다. 말만 요란하고 집권 후 경제민주화를 슬그머니 후퇴시키려는 박근혜 정부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재벌은 중소 IT 벤처사업 영역에 뛰어들어 벤처시장을 교란시키는 역할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IT시장, 이스라엘 국방산업, 이스라엘 7개 대학 등과 연계해 별도의 생태계를 형성하면서 IT 벤처창업과 기술판매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은 미국’ 이스라엘은 인텔과 구글 등 미국 IT산업과 매우 밀접하게 결합돼 있고 미국 자본시장과도 연계 정도가 높다. 이는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이 참조하기 어려운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막론하고 IT 관련 시장은 주요 재벌기업들에 의해 장악돼 있고, 이와 분리된 벤처시장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핀란드는 어떨까. 한때 전체 법인세의 20%를 감당하며 핀란드 경제의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던 기업이 세계적 통신기업 노키아다. 그런 노키아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자 세계는 “노키아의 고통이 핀란드의 고통”이라며 우려했고 핀란드 경제의 추락을 예상했다. 그러나 핀란드 경제는 지금도 건재하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우선 노키아는 매출 하락이 현실화되고 대량해고가 불가피해져 가는 2011년 봄부터 브리지 프로그램(bridge program)이라는 것을 가동한다. 일종의 퇴직자 창업지원 프로그램이다. 퇴직자 1인당 3천만원 정도의 별도 창업지원을 하는 등 노키아에서 습득한 기술을 가지고 벤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노키아 자신이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핀란드 기술혁신투자청(TEKES)도 퇴직직원의 창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이노베이션 밀’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인위적인 경제력 분산을 할 필요 없이, 시장에서 노키아가 몰락하는 위기를 중소 벤처 생태계 육성기회로 반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노키아의 고통이 핀란드의 이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제 1~2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핀란드의 이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뒤에 내팽개쳐진 2천명 이상의 쌍용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지금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벤처 영역을 잠식해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대기업이 위기에 닥치면 무책임하게 정리해고를 일삼으면서 퇴직 직원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기업행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모델이든, 핀란드 모델이든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경제민주화를 해야 창조경제 여건도 만들어지고 창업국가도 흉내를 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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