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만성적 허약과 방종에 의해 질병에 걸린 인간들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도덕적 타락은 추방이나 처형의 이유가 되고, 우수한 자손의 번식을 통한 도시 국가의 이상 실현을 위해 우수한 계급의 현명한 결혼을 주장했었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사회의 특권층을 형성하는 유전적 형질이 대물림된다는 의미다. 유전학적으로 이 말을 분석해보자면, 왕후장상이 되는 유전적 형질은 우성(dominant)이라는 뜻이다. 즉, 부모 중 한 쪽에서만 ‘왕후장상이 되는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그 자식은 왕후장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이 유전자가 열성(recessive)이라면 왕후장상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도태될 것이다. 우생학(eugenics)이라는 개념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만성적으로 허약하고 질병에 걸리는 이들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은 우수한 자손의 번식을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직접적으로 우생학이라는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에 의해서다. 골턴은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고안하기 훨씬 전인 1865년 훗날 <유전성과 천재>라는 책으로 출판될 한 글에서, “사회저명인사들의 가계를 추적/조사한 결과 이들 대부분이 혈연관계로 엮여 있으며, 신체적 특성 뿐 아니라 개인의 재능과 성격도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사회 특권층의 유전적 가계에 대한 결론을 바탕으로 골턴은, “우수한 남녀 간의 선택적 결혼을 몇 세대만 성공적으로 수행해도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종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우생학은 그 기원부터 사회 특권층이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골턴이 활동하던 영국사회의 특권층은 유전적으로 우수해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전적 우열을 나누는 기준이 자의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진화적 관점에서 유전적 우열은 주관적 가치판단의 영역은 아니다. 즉, 주어진 자연환경에서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형질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유전적으로 우수한 형질이라는 판단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현대판 우생학이라는 비판에 자주 노출되는)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남성의 능력과 재산, 힘, 용기, 사회적 지위, 야망, 너그러움, 부지런함, 정서적 안정 등은 여성이 짝을 고를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형질들이다. 여성이 이러한 유전적 형질을 보유하고 있는 남성을 짝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남성에 비해 자식을 낳고 기르는데 여성이 훨씬 더 큰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짝으로서의 남성이 장기적으로 자신과 자손을 보호해줄 수 있는 유전적 형질을 지녔는지가 여성의 생식적 적합도에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즉, 만약 사회적 특권층이 유전적으로 우수하다면, 우리는 특권층의 남성들에게서 위와 같은 유전적 형질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해 보자. 일반적으로 사회적 특권층이란 일반인들에 비해 재산과 지위가 현저하게 높은 이들을 뜻한다. 골턴을 비롯한 많은 우생학자들은 이러한 특권층이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 그들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즉, 특권층을 만드는 유전적 형질이 존재하며 이러한 형질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우생학은 이러한 특권층의 유전형질을 우수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현대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여성이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지닌 남성으로 판단하는 일군의 기준들이 존재한다. 능력과 재산, 힘, 용기, 사회적 지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준들 중 능력과 재산, 사회적 지위 등과는 달리 힘과 용기는 직접적으로 신체적 판별기준을 제공한다. 즉, 골턴과 우생학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특권층의 남성들은 비특권층의 남성들보다 힘과 용기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만큼 탁월해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19세기말 골턴의 눈에 비친 영국사회의 특권층 남성들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특권층에서는 19세기의 영국과는 정확히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확고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씨가 아들의 병역비리로 패배하고, 이를 계기로 2004년 <공직자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된 이후, 4급 이상 공무원과 직계비속의 병역의무 이행이 공개되고 있다. 이를 분석한 결과들은 참혹한데,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내각의 군 면제 비율은 24.1%로 일반 국민의 10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들의 경우는 이보다 심각해서 국회의원 본인이나 자제들의 병역기록이 조사될 때마다 항상 병역 면제율 1위를 달리고 있다. 16대 국회의원과 그 자제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조사했던 한 신문기사의 한 구절처럼 “이들의 높은 병역 면제율이 병무청 기준에 따른 합법적인 수치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자제들은 일반 국민들에 비해 건강상태가 현저히 나쁘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 중 대다수가 ‘신체결함에 따른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병역면제 비율은 정당을 가리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이 항상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고위공직자와 직계비속의 경우에는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외에도 7대 재벌가 자제들의 30%가 병역이 면제되었는데, 특히 삼성관련 그룹들의 경우 대상자 11명 가운데 8명이 면제를 받아 73%의 병역 면제율이라는 왕후장상의 면모를 기탄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판단해 본다면 한국사회의 특권층인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재벌 상류층 대부분이 심각한 신체적 결함에 노출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골턴은 특권층 일수록 신체적 우수함을 결정하는 우수한 유전적 형질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는데,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골턴의 우생학은 기초적인 가정부터 틀려버린 셈이다. 한국사회라는 분석대상을 통해 골턴의 우생학은 정말 멍청한 과학이 되어 버리는데, 한국사회에서 부자가 되려면 군대를 가지 않을 정도로 신체적 결함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는 2000년 3월 29일 기사를 통해 ‘군대를 가지 않으면 부자가 된다.’라는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16대 총선 출마자들 중 현역으로 복무했던 이들의 평균재산은 12억 3천만 원이지만, 병역 면제 출마자들의 경우는 평균 25억 6천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병역 면제비율이 대물림되고 있으니 이들은 유전적으로도 열등한지 모른다. 우생학이 아니라 열생학(Dysgenics)이 필요한 사회라는 뜻이다. 열생학은 우생학의 반대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특정 집단이나 종 내에 결함이 있거나 손상된 유전형질들을 누적시키는 요인들에 관한 연구’로 정의된다. 이 용어는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다가 1915년 데이빗 조단(David Jordan)이라는 과학자가 1차 세계대전의 열생학적 영향을 기술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조단은 1차 세계대전이 신체적으로 우수한 남성들의 씨를 말려버렸기 때문에 열등한 형질들이 인구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조금 더 진보한 열생학 이론은 1996년 리차드 린(Richard Lynn)이라는 영국의 심리학자에 의해 전개되었는데, 린은 <열생학: 현대 인구집단의 유전적 타락> 이라는 저서를 통해 산업사회 이후 인류는 자연선택을 벗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유전적으로 열등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1995년 영국 범죄자들의 출산율이 3.91명인데 비해 일반인은 2.1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었다. 시대착오적인 우생학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과 동시에, 통계적 방법론을 자의적으로 왜곡한다는 평가를 받는 리차드 린 박사는 ‘IQ세계지도’를 통해 한국인의 지능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리처드 린과 같은 학자, 그리고 흑인의 지능에 관한 인터뷰로 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제임스 왓슨과 같은 과학자들은 인종본질주의자들로 분류된다. 이들은 유전법칙의 확실성이 사회적 요인들의 효과보다 본질적이라고 믿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론에 우호적인 결과들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한다. IQ와 재산, IQ와 국민행복, IQ와 국가경쟁력 등의 연구가 대부분 이러한 방법론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대부분은 개입이라는 실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표현될 수 없다. 즉, 설사 IQ와 국가경쟁력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IQ가 높기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우생학과 열생학은 모두 이러한 과학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생학은 유전학이 생물학의 중심으로 성장할 무렵에 유전학적 성과들을 인류의 복지에 사용하고자 하는 응용학문으로 탄생했다. 불과 십여 년 전,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인간유전체계획에 의해 인간의 모든 질병이 해결될 것이라는 장미빛 환상을 확산시켰던 사건도,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연구가 모든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사기를 친 사건도, 100여 년 전 우생학자들이 사회를 대상으로 선전했던 과장광고와 닮아 있다. 우생학은 끝난 역사가 아니라 과학의 한계,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합 등과 얽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생학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과정은 복잡하지만, 19세기말 우생학이 등장하고 난 후,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이 우생학에 호의적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거대자본이 투입된 인간유전체계획이 인류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생물학의 발전을 위해 그런 정부와 언론, 유명과학자들의 언사들을 비판할 수 없었던 최근의 상황처럼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우생학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함부로 꺼낼 수조차 없었다. 미국의 이민법과 나치의 인종청소가 가속화되던 시기에 이르러서야 뜻있는 과학자들에 의해 우생학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 과학은 언제나 신중함을 미덕으로 삼지만, 그 신중함이 발현되는 맥락은 그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맥락과 과학적 한계들 때문에 20세기 초엽의 진보적 유전학자들이 우생학의 사회적 적용을 반대했다. 우생학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활동했던 이들 진보적인 유전학자들은 사회적 계급이 유전적 형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평등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며,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조건들 자체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우생학적 결론은 보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들도 스스로를 우생학자라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주장은 우생학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평등을 구현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했다. 특정 계급의 유전적 우월성의 여부는 그러한 사회적 평등이 보장된 사회가 구현된 후에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특권층이 신체적/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리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이 사회적으로 누리고 있는 지위가 유전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층의 신체적/유전적 결함이 통계적으로 명확히 드러난 이상, 이를 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전적 열등함이 과연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인지, 이러한 현상이 한국사회에 특수한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유전적 열등함을 장려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결론을 위해 국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20세기의 진보적 유전학자들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사회적 평등을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특권층과 유전적 열등함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주—————-1) 박희주(2001). 새로운 유전학과 우생학. BioWave, 3(6): 3.2) 위 논문.3) 이 법률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신청이 이루어졌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했다. 4) [단독]고위공직자 軍면제율 일반인 4~5배, ‘면제대물림’도 심각, 헤럴드경제, 2011년 3월 4일.5) 국회의원 자제 병역면제율, 일반인의 9배, 오마이뉴스, 2004년 4월 1일.6) 위 신문기사 (헤럴드경제, 2011)7) Richard Lynn: Dysgenics: genetic deterioration in modern populations Westport, Connecticut. : Praeger, 1996., ISBN 978-0-275-94917-48) 한국인이 세계 최고 수준? IQ 세계 지도 ‘논란’, 팝뉴스, 2007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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