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이 마지막이라니, 문득 언제 연재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2011년 9월 20일,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글로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년 하고도 4개월여 동안 2주에 한 번 썼으니 35번쯤 연재했을까?이제는 많이 깎이고 무뎌졌지만, 술 마시면 어른들에게도 막말을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에게 감히 반기를 들었던 모난 이미지가 ‘착한 경제학자’로 환골탈태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횡재에 가깝다.내가 ‘착한 경제학’의 이름으로 현실을 들여다볼 때 내 현미경의 태반은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이었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주류경제학의 인간관에 반기를 들었다. 거슬러 올러가자면 197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요, 경제학자이자 인공지능 창시자, 한마디로 현대의 마지막 백과전서파라 할 수 있는 사이먼(Simon)의 ‘제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이를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가정과 달리 사람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으며 모든 걸 계산한다기보다 주먹구구(heuristics)로 일을 처리한다는 주장이 제한합리성이다. 그러니 사이먼을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이후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카네만을 거쳐 최근에는 가장 인기있는 분과로 떠올랐다. 카네만은 인간의 제한합리성이란 완전한 비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편향을 보인다는 점을 제시했다. 예컨대 그와 티버스키(Tversky)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이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과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예컨대 피자를 시킬 때 토핑을 모두 올려놓은 상태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빼는 방식과 자신이 원하는 토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주문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면 어느 쪽에 더 많은 토핑이 올라갈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추가하는 주문방식의 토핑이 2분의 1가량 적었다. 즉 어떤 상태를 사고의 출발점(준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있던 데서 줄어드는 것을 더 싫어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00원을 벌 때에 비해 잃었을 때 심리적 상실감이 더 크다. 이를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등으로 부른다.이렇게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결합하거나 인류학의 결과에 주목해서 사회 현실을 맨눈으로 설명하려 한다. 내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으로서의 협동이었고. ‘인간은 어떤 경우에 협동을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기서는 진화생물학과 활발한 교류가 벌어졌고 전에 소개한 노박의 ‘인간 진화의 5가지 규칙’은 그 중간 정리였다. 최근에 노박의 책, <초협력자>가 번역 출판되었는데 노박은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협동하는 종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해서 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특히 나는 노박의 규칙 중에 집단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분석한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집단 경쟁에 의한 협동과 집단 정체성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유발하여 사회적 대립상태로 치닫기도 한다.이런 상황에 대한 탐구는 노동운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노동자는 기업이라는 집단에 속해서 다른 기업과 경쟁하는 동시에 노동자 계급에 속해서 자본가와 경쟁(투쟁)하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보통 여러 집단에 동시에 속해 있으므로 한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여럿이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지도 흥미로운 주제이다.또한 집단선택에서는 개인 수준의 선택과 집단 수준의 선택이라는 공진화(coevolution)가 일어나므로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집단에 변화가 올 수도 있고, 되먹임 효과를 통해 집단 전체의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해묵은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다. ‘착한 경제학’은 이런 흥미로운 얘기를 가득 품고 있다. 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안녕”이라는 인사를 드린다.* <착한 경제학>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