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언론매체와 서점가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년 예측과 전망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 비관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유럽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가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경제의 회복력도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BRICs의 고성장 동력도 이제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도 2% 초반 대에 불과한 올해의 경기 둔화 양상이 내년에도 유사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꺾여 나가자 대기업과 보수진영에서는 다시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성장 담론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얼마 전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이슈별 오해와 진실’ 이라는 자료를 발표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번째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인데, 전경련이 제시하는 해법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라면서 1% 성장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6만개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를 성장론으로 대치해버리는 한국 재벌의 전형적 논리다. 지금까지 잘못된 성장론을 고집한 결과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고 바로 그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는데 여전히 전도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재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처음에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더니, 지난 달 부터는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함께 가야 한다”면서 성장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장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경제 민주화의 내용은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지금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 침체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내년은 올해와 유사한 침체가 거의 확실시 됨은 물론, 차기 정부 집권 5년 기간 동안에도 침체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 세력,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성장 동력, 성장 경로,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보수의 성장론은 양적인 GDP 숫자에 초점을 두는 양적 성장이다. 신자유주의 보수의 성장론은 노동의 소득 증대 보다는 자본의 투자 수익률에 집착하는 자본 친화적 성장이다. 보수의 성장론은 국가의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무력화시킨 불평등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세계적으로 한쪽에서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 주도형 성장 방식에 의해, 다른 한쪽에서는 소득이 아닌 부채를 동원한 소비로 성장하는 방식에 의해 구현되어 왔다. 바로 이런 성장 방식의 종말을 보여준 것이 2008년 금융위기이고 지금의 장기 침체다. 한마디로 보수적 성장론의 붕괴가 바로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어떻게 성장을 시켜주겠다고 ‘공약(空約)’하는 것인가? 침체에 빠진 경제의 회복과 성장 해법은 더 이상의 보수의 수중에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성장은 보수의 담론이라는 관념이 지금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진보가 성장 담론을 책임져야 한다. 보수의 양적 성장, 자본 친화적 성장, 불평등 성장과 달리 진보가 주장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이다. 노동 친화적 성장이며 소득 주도형 성장이다. 기업 현금창고가 아니라 가계의 살림을 튼튼히 하는 성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진보적 성장은 경제 민주화의 기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처럼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진보의 성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주주를 위한 단기적 수익률 제고 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고려한다. 금융적 투기 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적 투자를 중시한다. 인건비용 줄이기에 집착하지 않고 안정된 노동시장 유지에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탄탄한 공공지출을 통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고 공공교육을 확대하는데 정책적 비중을 둔다.또한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발”로 정의된다.(1983년 유엔에 의해 지명된 브룬트란트위원회의 선언에서 제시) 다음 세대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토대로서 지금의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에너지 고갈 위험과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등의 최근 상황을 감안해볼 때 더 이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 성장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성장론에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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