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922조 원까지 늘어난 가계부채가 가계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가계부채는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오히려 늘어났다. 2007년 말 가계부채가 665조 원이었으니 2008년 이후 거의 40% 가까이 빚이 늘어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1분기부터 증가폭이 크게 둔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시중은행이 전년 대비 2% 이내 수준으로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카드사도 정부 규제 등의 영향을 받아 대출을 억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부채 증가가 가계의 취약한 소득을 보완해줘 가계의 구매력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이에 따라 민간소비가 증가해 단기적으로는 내수에 기여했다. 은행들도 대출을 늘리면서 수익이 증대했고, 이 역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가계부채가 일정 부분 내수를 끌어가는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돼 은행에서 가계로 흘러가는 추가 대출은 줄어든 반면, 가계가 은행에 되돌려줘야 하는 이자는 늘어났다. 한마디로 은행에 대한 부채상환 부담 때문에 구매력과 소비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은행들도 대출상품 판매를 추가로 할 수 없게 됐음은 물론이다. 가계부채가 상당 기간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채권 은행과 채무 가계의 관계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채에 취약한 계층을 중심으로 상환 불능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저소득 부채가구, 자영업 부채가구, 내 집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가구의 위험성이 크다. 이들이 바로 워킹 푸어, 자영업 푸어, 하우스 푸어라고 하는 3대 푸어 집단으로, 일을 해도 가난하고 자기 사업을 해도 가난하며 집이 있어도 가난한데, 여기에 빚까지 얹어지면서 고통이 가중되는 것이다. 물론 1000조 원대 가계부채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넘게 누적된 결과며, 일차적으로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차입을 늘려온 가계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지금 고통이 따른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빌린 가계만 책임이 있고 돈을 빌려준 은행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우리보다 먼저 가계부채로 파산을 경험한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개혁법에서 약탈적 대출 금지조항을 신설해 과잉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했음을 참고해야 한다. 차입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을 해줘 수익을 추구하고, 부실이 나면 국민 혈세나 마찬가지인 공적자금을 받아 연명하는 금융기관의 이런 행위를 포괄적으로 약탈적 대출로 간주하면서 규제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엄격하게 상환 능력을 검증하지 않은 대출이나 10년 이내 단기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부 일시상환대출, 과도한 수수료 등 금융소비자의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는 대출 형태 등은 포괄적으로 보면 약탈적 대출 요소를 갖춘다. 가계부채 위험과 손실 부담을 은행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또한 가계대출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가계대출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우리만 가계부채가 늘어나는데도 “경제규모가 커지면 부채규모도 커질 수 있다”며 예방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는 데 소홀했다. 아울러 저축은행 부실 우려나 신용카드사 과잉경쟁 등에 뒤늦게 개입함으로써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저소득층이 몰리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계부채 실마리를 풀어야 할까. 먼저 집 한 채가 한 가계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현실상 은행의 무차별적 압류조치에 대한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채권자인 은행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아난 우리 은행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 약탈적 대출 규제하자는 움직임도 있어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들이 올린 엄청난 수익에 대해 언론에서 문제 삼은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2011년 은행들의 세전수익은 19조 원이다. 2010년 대비 46%나 상승한 규모다. 세금을 내고 손실대비준비금을 적립하고도 12조 원이나 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0년 6.2%, 2011년 3.6%였다. 그런데도 은행은 이익신장률이 50% 가깝게 뛰어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실적은 제조업처럼 해외 수출이나 기술혁신을 통해 달성한 것이 아니다. 예금 금리는 낮추고 대출 금리는 높여서 이익을 얻는 ‘땅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로 큰돈을 벌었고, 그것도 해외 시장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심각한 국내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치고는 지나치게 컸기에 비판이 일었던 것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가계소득이 늘지 않고 부동산값도 오르지 않는데 가계대출을 늘렸다면, 신용과 담보가치 평가 등 상환 능력에 대한 엄밀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추정도 가능할 법하다. 최근 상환 능력을 엄격하게 고려해 대출을 해주고, 이를 어기면 상환의무를 소멸시키는 것까지 고려한 ‘공정 대출법’을 입법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금융, 특히 은행의 ‘공공성’을 부쩍 강조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세미나를 통해 “국내 은행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내부관리 체계 개선, 사회적 책임 활동 체계화, 경영지배구조 개선 등 은행에 대한 공공성 요구에 적극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은행들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을 나눠지려는 자세를 보이고, 향후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동아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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