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넓은 국토는 대부분이 초원이고 40% 정도가 사막이다. 아시아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일 년 내내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어서 늘 맑은 하늘을 보게 된다. 1년 중 260일 가량 구름이 없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몽골의 하늘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늘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도 8월인 요즘은 낮에는 24도 안팎, 밤에는 18도 정도이니 한국의 가을 날씨 같다. 지금쯤 서울이나 제주는 푹푹 찌는 폭염 소식을 연일 뉴스가 전하고 있을 거다.몽골의 초원과 끝없는 지평선으로부터 퍼져가는 구름들. 가운데 점점이 보이는 것은 이동하는 수 백 마리 말들이다.돌 하나씩은 지니고 다니는 몽골 주민들각자 흩어져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아침 진료가 시작되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몽골 주민들은 거의 자기의 진단명을 붙이고 얘기가 시작한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고 ‘쓸개에 돌이 있어요.’라고 하든지, 허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신장에 돌이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다가 돌 하나씩은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몇 년 전 처음 몽골에 왔을 때는 너무 황당하고 놀라서 문진도 자세히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이동식 초음파로 검사도 해봤지만 간이나 신장, 쓸개에 돌이 있다고 얘기하더라도 실제는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더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물이 귀해서 잘 걸러지지 않은 물이나 지하수를 먹기 때문에 석회수가 섞여서 몸속에 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콩팥에 만들어지는 신장결석이든 쓸개에 생기는 담석이든 석회수에 많이 섞인 칼슘 침착이 이유가 되며, 그들의 섭식 습관 중 육류 섭취에 의한 콜레스테롤 증가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문제는 허리가 아프면 당연히 콩팥이 나쁜 거고, 그 원인은 주로 신장결석 때문이다 라든가 배가 아프면 담석이 있어서라는 생각을 쉽게 해버린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종합병원에 초음파 기계가 한 대뿐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초음파나 요로검사를 통해 결석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보니 의사들마저 ‘돌이 있어서 아픈 거예요’라고 여겨버리는 것 같다. 일종의 관성적 진료이다.진료중인 필자알러지가 많은 주민들또 몽골 주민들에게는 특징적인 질환군이 있다. 바로 알러지로 인한 비염과 피부염들이다. 그것들은 검사보다도 증상과 간단한 진찰만으로도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금새 알 수가 있다.“알러지 비염이 있어요.”, “피부가 늘 간지러워요.” 찾아오는 많은 주민들이 이런 호소를 한다. 알러지(Allergy)란 말 자체가 과민반응을 뜻하므로 코가 민감하게 반응해서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을 나타내면 알러지 비염인 것이고, 피부가 어떤 자극에 자주 가려움증을 나타내면 알러지 피부염인 것이다. 몽골은 공기가 맑고 오염되지 않아서 우리와 같은 도시의 오염 때문에 생기는 자극은 적어도 초원의 풀에서 만들어지는 꽃가루나 관련된 물질들이 알러지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알러지 비염의 경우 증상을 물어보지 않아도 주민들마다 코 안을 들여다보면 알러지 비염 환자 특유의 점막 부종 현상을 심심치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피부는 햇볕에 타서 거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피부 가려움증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예상을 하고 충분히 가지고 온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연고류는 진료가 끝나기 전에 동이 나 버릴 정도다.내가 제주도로 이사 와서 진료를 하다가 놀랐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서울보다 제주에서 알러지 비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알러지 비염이 공기의 오염보다는 알러지 유발 물질(‘알러젠’이라고 한다)이 더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다. 풀과 나무가 많아 여러 종류의 식물성 알러지 유발 물질에 노출될 영향이 크고, 특히 제주 산간 도로를 운치 있게 에워싸거나 감귤나무를 보호하려고 둘러친 방풍림인 삼나무들이 문제였다. 지금부터라도 방풍림으로 삼나무 대신 편백나무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제주와는 달리 몽골의 그 많은 초원을 다 바꿀 수도 없고…밤이 되어 간단한 평가가 끝나고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대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을 벌리고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었다.“어디가 아파요? 또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아니요. 원래 알러지가 있는데, 너무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참아보려고 버티다가 어젯밤에는 한숨도 못 잤어요.”이런 녀석을 미련 곰탱이라고 했던가? 간단히 약을 먹어서 증상을 줄여주면 될 것을 며칠 동안이나 참다니… 서울에 있을 때는 그래도 여름이라서 괜찮았는데, 몽골에 오면서부터 눈이 가렵고 코가 막혀 힘들었다고 했다.남들은 차타고 오면서 몽골 초원의 푸른 기운을 예찬할 때 이 친구는 남몰래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하고, 진작 챙기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급한 대로 주사를 주고, 며칠 먹을 약을 싸주었다.그 친구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멀리 개 짖는 소리, 잠 안자고 두런대는 자원봉사자 학생들 목소리도 조금씩 줄어들고… 시간이 잠시 흘러 풀벌레 우는 소리가 짙어질 때쯤, 내일은 마지막 진료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을 밤하늘에 전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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