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연이틀 두 개의 토론회에서 발표를 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즈음해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양쪽 모두 족히 300~400명이 모였고, 질문이 쏟아지는 등 후끈한 분위기였다. 바야흐로 협동조합, 더 큰 범주로 사회적 경제(경제적 이익과 함께 구성원과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도 실현하는 경제)의 시대가 열리는 걸까.나는 항상 “여기서 협동조합에 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이 접니다”라는 말로 토론을 시작한다.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다(내 생각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이 결정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자활공동체운동, 실업극복국민운동, 생협운동, 사회적기업 등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그동안 수많은 활동가와 이론가의 소중한 경험이 쌓여왔다.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토론회, 심지어 활동가 교육모임에 자주 불려다니는 것은 협동에 관한 최근의 이론으로 사회적 경제의 원리를 설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진화생물학자, 진화심리학자, 행동/실험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 협동하는가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합의점들을 찾았는데 하버드대의 생물학 및 수학과 교수인 노박은 이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피가 많이 섞일수록(혈연선택. 가족 내에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을수록(직접상호성, 단골은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이 잘 알려져 있을수록(간접상호성,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다면 협력자를 골라서 사귈 것이다), 그리고 협동하는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다면(네크워크 상호성과 집단선택, 협력자가 많은 집단의 성과가 더 좋을 것이다) 그 사회 전체에서 협동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조건을 잘 갖춘 사회에서는 이제 협동이 사회규범(social norm)이 되고 협동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집단 정체성(group identity)를 갖게 된다. 협동하는 사회에서는 상호적 행동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협동하는 사람에게는 협동하고 사회규범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스스로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하거나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상호성이다. 상호성이란 사실 황금율(“대접받고 싶은대로 상대를 대접하라”)이나 공자의 “네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와 동일하다. 상대방이 협동할 것이라고 믿는, 신뢰의 사회에서 협동은 애써 노력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이런 사회는 계약이 복잡하지 않고 법적 분쟁도 적을 수밖에 없어서 거래비용이 낮으며 따라서 경제성과도 좋다.인간이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상호성이 인간 본성에 가깝다는 말이니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는 가장 보편적인 경제 형태라고 봐야 한다. 실로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야말로 예외적인 존재다. 활동가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확신이 이론적으로 증명된다는 데서 환호하는 것일 게다. 특히 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 사회적 경제가 늘어나는 것도 사회적 딜레마(이기적 행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협동뿐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경제가 선풍적 인기를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이제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는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서 사회적 서비스나 장애인 등 사회적 배제자의 고용에서 당장 위력을 발휘하지만,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거버넌스만 갖출 수 있다면 어느 분야에나 적용가능하다. 파업 중인 KBS나 MBC에 사회적 경제의 원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전 국민이 시청료를 내는 KBS는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시청자가 이사회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MBC 역시 시청자 몫의 주식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은 공공재인 동시에 시스템재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의 공공성이 요동을 치면 안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이사회 구성에, 충분히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할 만큼의 시청자 및 노동자 이사를 더해서 협동조합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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