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는 남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북유럽은 그런 신뢰가 쌓여서 사회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규범을 내면화 했다.”지난번에는 납세자 쪽의 무임승차를 얘기했지만 경제학자들이 툭하면 들먹이는 것은 ‘수혜자’ 쪽의 무임승차다. 만일 실업급여로 이전 월급의 80%를 받는다면 툭하면 회사 그만두고 일하지 않는 베짱이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독일과 스웨덴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 또는 그 다음날에 병가(스웨덴에서는 병가는 유급이며 진단서를 낼 필요가 없다)가 대폭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무임승차의 증거가 될 것이다.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영미형에서는 잔여복지 또는 선별복지(‘맞춤형 복지’라는 말도 다분히 잔여복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를 시행한다. 국가는 생존권을 보장하는 수준의 복지만 제공해야 한다는 ‘경험적 자유주의’(프리드만, 하이예크)가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는 철학이다. 이들 나라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얻는 수입, 그리고 가족에 의해 삶을 누려야 한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복지를 받으려면 이런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철저한 자산조사(means test)가 필수적이며,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낙인효과(stigma effect)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각각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인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현재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이 두 번째 무임승차 문제를 훌륭하게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히 실업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고용률(15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뚜렷이 높다. 어떻게 이런 신통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북유럽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불운을 당했다면 기꺼이 그를 도우려고 한다. 반면 노력할 여지가 충분한데도 도움을 청하면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기 일쑤라는 것이다.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스웨덴의 노동조합(LO)이 연대임금제도를 시행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파산하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실업자가 된 이들이 재교육·훈련을 거쳐 다른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완전고용도 달성하고 산업구조도 고도화될 테니 일석이조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노동자 주도의 구조조정인 셈인데, 고용률이 높아져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어서 이 정책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동력이 되었다.치열한 시장경쟁은 언제나 패배자를 낳으며 누구나 판단 실수로, 또는 단순한 불운으로 패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으로 누구나 재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으랴. 결국 문제는 남을 믿는 것이고, 동시에 남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북유럽은 그런 신뢰가 쌓여서 사회규범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규범을 내면화했다. 이런 사회에서 남들이 낸 돈으로 그저 놀고 먹는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정부의(또는 국민 스스로 선택한) 적절한 정책과 사회적 신뢰, 이것이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두 번째 무임승차를 막는 첩경인 것이다.반면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전제한다면, 따라서 무임승차가 필연이라면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전에 그런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이렇게 상대가 자신을 나쁜 놈 취급하면 사람들이 딱 그 수준에 맞춰서 행동한다는 것을 거듭 증명했다. 예비군복만 입히면 남자들이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기적 행동이 당연한 것이 되고 착한 사람은 오히려 바보(sucker) 취급을 받게 된다. 퍼트넘이 ‘나 홀로 볼링하기’(Bowling alone)에서 집어낸 미국 사회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북유럽처럼 신뢰로 가득찬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극도의 경쟁만 가득찬 현재의 한국에서 보편복지를 시행하면 무임승차가 만연하지나 않을까? 다음번에 다룰, 정말 고민스러운 주제이다.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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