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한반도 지형의 안정화에 대한 우려가 크게 증폭되고 있다. 2008년 이후 김 위원장의 심장질환으로 인한 병세 악화는 알려져 있었지만 갑작스런 사망은 한국과 서방세계에서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충격이었다. 또한 김정은 후계체제가 아직 공고하지 않다는 평가가 중론이어서 향후 불안정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향후 파장이 쉽게 예측되지 않는 이유다. 대다수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 후 시나리오를 17년 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전후와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김위원장의 사망 전후 환경은 약 2년 전인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선 야당을 포함한 국내 진보단체들이 우려하는 이른바 ‘북풍’을 정부가 기획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천안함 사건이 ‘북의 도발’에 의한 것으로 발표하면서 야당과 진보세력은 ‘북풍’이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심각히 걱정하였고, 정부 여당은 이를 이용하려 한 측면이 있었다. 지금도 김 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정치적 궁지에 몰린 정부와 여당이 국면 전환을 시도하지 않을까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내년 4.11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 여당이 디도스 사건과 대통령 친인척 비리, 그리고 한나라당의 내분사태 등으로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자칫 대부분 국내 정치, 사회 이슈가 묻혀버리고 한반도 긴장 국면이 압도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4년 내내 기대했던 ‘북 조기 붕괴 시나리오’를 과장하는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단이후 수 십 년 동안 ‘반공’의 딜레마를 반복해서 경험했던 역사적 전례에 비추어 걱정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 여당의 ‘북풍’기도는 기본적으로 실패했고 선거 결과는 복지를 내세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6.15 공동선언 이후 10여 년이 경과하면서 적어도 20~30대들에게는 ‘안보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보수화 논리가 잘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SNS등에서 주고받는 네티즌들의 반응 가운데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향후 사태 전개의 불안함 보다는, 이틀 동안 아무런 사전 인지도 하지 못한 정부의 정보력과 대응력에 대한 비판이 상당부분 있다는 것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 정부와 여당이 1994년처럼 조문파동을 일으키고 남북관계를 긴장국면으로 몰고 가려고 한다 해도 지금은 국민들에게 큰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정부와 여당이 달라진 국민의식과 시대변화를 명확히 인지하길 바란다. 둘째로, 북풍 효과가 사라졌다는 것 이상으로 1994년과 달라진 환경은 바로 경제적 측면에 있다. 반면 경제 환경으로 볼 때 2010년과 지금의 상황은 묘한 유사성이 있다. 둘 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2010년 5월은 그리스 채무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오면서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당시 한국의 주가와 환율로 매우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천안함 사건 발표가 나자마자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했었다. 심지어는 뉴욕 증시를 포함한 세계 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긴장하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1994년만 하더라도 세계증시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은 보잘 것 없었고,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한국 증권시장이 외부에 거의 개방되지도 않았다. 실제로는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한국 증시가 다소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르든 내리든 세계 금융시장에 주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김일성 주석 사망에 대한 대처방식을 고려하면서 금융시장이나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는 것은 당시에 매우 부차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국 자본시장은 세계시장에 완전 개방되었고 그 비중도 세계 18위에 이른다. 더구나 북미와 유럽 경제여건이 매우 악화된 상황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시장의 안정이 세계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세계경제를 안정시킬 마지막 지탱축이 불안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 발표가 있은 후 한국 국민과 세계는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을 걱정했고 ‘경제를 위해 한반도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정부와 여당이 의도했던 위기의식은 국민에게 먹히지 않았고, 주변국들도 위기가 아니라 평화를 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채무위기는 2010년 5월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해졌다. 2012년 유럽의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한국경제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경제가 얼마나 악화될 것인지를 가르게 될 중요한 시점에서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나온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20~30 포인트로 내려가던 주가는 사망 소식에 추가적으로 20~30포인트가 더 내려가고 환율은 폭등했다. 한반도의 정치, 군사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 이상으로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국민들에게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자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골드만삭스가 민첩하게 김위원장의 사망이 금융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북한 내에서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 상황을 진화하는 등 위기의 확대를 경계하고 나섰다. 미국 등에서도 북한에서 ‘아랍의 봄’ 같은 것이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면서 과거처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여론공세를 극히 자제하는 분위기다. 섣불리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지 않고 평화적 환경으로 유도해야 할 유일한 책임은 우리 정부와 여당에게 있다. 우리 정부만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현재 상황에서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고 갈 세력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더 이상 통하지도 않는 ‘북풍’에 대한 유혹을 버리고 경제를 위해서라도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관리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북의 후계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것인가 하는 이슈가 핵심이겠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 보아서는 한국 정부가 차분히 한반도 안정화에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이 글은 인터넷 신문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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