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관에서 내년 경제전망을 잇달아 발표했다. 한국경제가 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기관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정책의지를 실어 늘 평균보다 높게 발표했던 정부조차도 3.7%밖에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성장률이 6.2%였고 올해는 3.8% 정도로 반토막 났지만 일자리가 40만개 이상 늘어나 체감정도가 약했던 데 반해 내년에는 성장률·고용·소득 모두 확연한 침체를 체감할 것이 예상된다. 2009년 이후 3년 만에 또 어려운 살림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낮게 잡은 성장률 3.7%도 내외적 경제환경을 비춰 볼 때 상당히 낙관적 시나리오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 경제전망을 어둡게 보는 결정적인 요인은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로존 경제의 침체는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문제는 유럽의 위기가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이나 경기조정 국면이 아니라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를 노출시키면서 장기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이다. 유로통화동맹을 더욱 강화해 재정동맹으로 갈 것인지 반대로 유로통화동맹을 깨고 통화주권을 각 국가에게 돌려주는 해체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든 유럽경제와 세계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주면서 침체의 골을 깊게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유럽의 위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그럭저럭 유지되다가 내년 하반기에는 수습과 회복 국면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경제전망을 짜고 있다. 때문에 내년 세계경제가 3.6% 정도의 성장을 하고 세계 교역도 5%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가정해 우리의 성장 추세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실현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UN은 내년 세계경제가 기본 시나리오로 봐도 2.6%, 비관적으로 보면 0.5% 정도로 추락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GDP 대비 수출비중이 50%를 넘어섰다. 2007년 기준 40% 수준에서 10% 이상 커진 것이다. 그만큼 외부 경제환경에 큰 영향을 받게 됐다는 뜻이다. 무역 1조달러 돌파를 마냥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다. 정부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세계경제가 나빠지면 수출에 타격을 주고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이다. 특히 우리의 핵심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 내년 수출 증가율을 0%로 잡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5~10%의 수출 증가율 전망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민간소비·설비투자·정부소비 등 내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돈을 풀 것을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민간소비의 위축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민간소비가 올해 2.5%에서 내년에는 3.1%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가 다소 떨어져 실질구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측면은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내년에 국민들의 소득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2009년 식으로 임금 동결이나 삭감을 피할 수 있으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저축으로 소비를 할 수 있지만 한국 국민들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저축이 적은 형편이다. 저축통장에서 꺼내 쓸 돈이 없다. 또한 자산 가격이라도 상승하면 소비 증가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정적으로 최악으로 치닫는 가계부채가 소비를 근원적으로 제약할 것이다. 올해보다 주머니를 더 닫을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과 민간소비가 매우 비관적인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고 국민들의 생활형편 추락을 방어하기 위해 남은 두 경제주체의 책임이 크다. 하나는 정부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이다. 먼저 정부는 지나치게 ‘재정균형’ 이데올로기에 갇혀 경제를 살리는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벌써부터 경제 주무부처 장관이 ‘추경예산 편성 가능’을 운위하는 것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는 듯하다. 문제는 재정지출을 또다시 토목건설 등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정부지출이 제대로 들어가도록 하는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저축 여력이 있는 기업의 책임이 중요하다. 수출 둔화와 경기침체를 핑계로 비용을 줄인다고 임금동결이나 구조조정 카드를 쉽게 꺼내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4년 기간 가장 큰 혜택을 봤고 경제위기 와중에서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렸던 대기업들이 어려운 경제 국면에서 국민들과 고통을 나누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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