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있는 세계경제가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 지 3개월이 넘어간다. 올해 8월5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전후해 위험해진 세계경제는 남유럽 채무 국가들의 부실 우려가 한껏 증폭된 뒤로 근본적인 대책은 고사하고 임시방편들도 국면을 진정시키는 데 역부족이다. 결국 세계경제의 문제해결과 미래 방향 제시를 위한 포괄적인 협력을 하기로 된 G20 정상회의가 다가왔건만 어떤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어떤 합의를 해낼지 실마리도 잡히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G7을 역사적 유물로 만들고 새로 탄생한 G20에 대한 기대가 지금처럼 낮은 적도 없었다. 한국 금융시장은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정도에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하면서 3개월 동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주가와 채권가격·환율 등 주요 금융가격 변수들이 상당히 높은 폭으로 변동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금융시장이 충분히 유럽발 금융위기 충격을 견딜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불안 요소는 있겠지만 2008년에 비하면 충분히 충격을 흡수할 만한 여력이 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고, 금융시장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근거는 있다. 2008년 기억을 돌이켜 보면 당시 외국에서 한국 금융시장 불안 요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은행의 단기 외화차입 비중이 외환 보유고의 80%로 너무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의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중)이 125% 이상으로 높고 당연히 고객 예금 이외에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기 외화차입 비중이 49%로 낮아졌고 시장성 수신 비율도 절반 정도 떨어진 12% 남짓에 불과하니 웬만한 금융충격이 와도 견딜 만하다는 것이다. 외환보유고도 당시보다 700억달러쯤 더 늘어났다. 외환보유고는 3천100억달러가 넘는데 이미 한·일, 한·중 통화스와프까지 맺어 둔 상태다.그러나 3년 동안 여건이 개선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과거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고 규모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불어나는 특성을 감안하면 약간의 개선만으로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불안한 요인은 금융위기 이후 2년 넘게 우리 자본시장으로 유입된 해외자본 규모가 불안을 걱정할 만큼 너무 크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유입된 자금을 보자. 2009년 3월 저점 대비 지난 7월까지 450억달러가 순유입됐다. 그동안 주가도 올라서 잔액평가 가치로 늘어난 금액은 무려 1천700억달러다. 우리나라 증권 투자자금 순유입이 다른 신흥국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 한국은행 설명이다. 채권시장에도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왔다. 같은 기간 채권시장에서는 증권시장과 비슷한 규모인 410억달러가 유입됐다. 최악의 경우 지금까지 유입됐던 자금이 금융위기로 저점을 이뤘던 상태로 되돌아간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800억~900억달러가 빠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천500억달러에 달하는 은행의 단기 외화차입까지 포함하면 우리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규모다. 그동안 유입이 많아서 주가가 오르고 채권금리가 내려가서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유출 가능성에 대한 위험부담도 같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런 자금유입은 우리 국민경제를 위해 우리가 원했던 것인가. 지난 수십년 동안 ‘외자 유치’가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당연히 여겼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 증권시장에 들어온 외국자금은 자국의 경제위기 대처 방편으로 미국과 선진국이 과잉 유동성을 공급하고, 이것이 아시아와 한국으로 흘러 들어온 것에 불과하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 외에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만한 요인이 없다. 불안정성만 키울 뿐이다. 흔히 외자유치라고 말하는 외국인 직접투자는 2009~2010년 동안 320억달러에 머물렀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기간 우리의 해외투자는 410억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외자 유치국이 아니라 해외 투자국이 된 것이다.증권시장에 대규모 자본 유출입이 빈번해 불안을 조장한다 하더라도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최근의 국제 추세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투기적 단기자본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자본통제(capital control)’ 정책이 각 국가의 거시건전성 안정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정당한 경제정책으로 수용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개방을 선도해 왔던 IMF조차 ‘최후의 수단’이라는 단서가 있지만 자본통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 성명에도 이미 자본 유출입 통제에 대해 용인한 문구가 삽입된 바 있다. 국내 자본시장으로의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 국민경제에 유익한 측면보다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부작용이 더 크다면, 외자유치가 이제 우리경제 발전에 절대 명제가 아니라면, 더욱이 이에 대한 규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용인하는 상황이라면, 자본 유출입 변동에 불안해하면서 그때그때 연기금을 동원해 주가를 떠받치거나 외환보유고를 투입하면서 환율 방어에 나서는 소란을 피울 필요가 있을까. 적절한 자본통제 장치를 도입하면 그뿐이 아닌가. 그렇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유시장에 대한 무모한 신념 정도가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갖가지 위험성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처럼.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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