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고즈넉했다. 태풍 무이파와 지난 8일에는 공권력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해변에 모여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도 평화로웠다. 서로의 몸을 묶었던 쇠사슬마저 힘든 일을 마친 사람처럼 너부러져 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찾아간 이 마을을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귀에 한가롭게 서 있는 젊은 경찰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공안기관 대책회의’가 열리고 경찰 지휘권까지 바꾸면서 또 다시 폭풍을 맞고 있다. 이 작고 소박한 마을의 불행은 앞으로 적어도 몇 십 년 세계를 좌우할 G2체제, 즉 미-중 대립의 한 복판에 들어 있기 때문에, 아니 우리나라 전체가 스스로 들어가려 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정부와 해군, 그리고 이 지역 출신 문정인 교수처럼 국익론자들 말마따나 제주도가 전략적 요충이라면 미국과 중국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잠까지 들쑤시면서 해군기지 건설이 우리의 국익(가상의 석유, 가상의 영토 분쟁 등 유사시의 대비)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문정인 교수는 이 해군기지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MD(미사일 방어계획)에 편입될 경우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이 ‘낮은 수준의’ 해상 MD 협력에 머물러야 하며, 이 기지는 중국군의 일차 타격 대상이 되므로 미국 항공모함의 전진기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분명 참여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훨씬 더 깊이 미국의 MD계획에 개입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미-중 대립이 격해지면 차기 정부는 더욱 더 명시적으로 미국의 전략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한미 FTA 협상을 시작했을 때, 내가 아주 구체적인 사안으로 의료민영화의 위험성을 지적하자 고 노대통령은 “그것만은 내가 막는다”고 대답했다.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땅의 사람이 아니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평택의 기지도 중국의 일차적 타격대상이지만 중국의 목줄기를 겨누는 위치로 공군을 집결시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강정마을 역시 언제든 MD전략에 동원될 수 있다. 물론 결정적 차이가 있다. 평택 공군 기지는 당시 미군이나 정부에 절실했지만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는 별로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해군과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현재 미국이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우리 스스로 섶을 지고 “가상의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해군 주장대로 아주 훌륭한 기지가 존재하는데, 유사시에 미군이 그걸 그냥 내버려 둘까?분명 지금 우리는 안보 딜레마에 걸려 있다. 그러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국익’도 지키고 이 딜레마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 안보 딜레마란 서로의 불신에 입각해서 경쟁적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다. 더구나 군부 강경파들은 자신의 군대와 예산을 확보하는 데 이 딜레마를 종종 이용한다. 중국이 해군을 더 강화하면 ‘전략적 요충지’인 제주에 기지를 더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거론됐던 화순에서 모슬포까지 대 중국 해공군 복합 군사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변도 나올 것이다. 그것이 이 딜레마의 특성이다. 그 누구도 이 기지가 가상의 석유 분쟁과 가상의 영토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행태는 양쪽의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기에 사태는 악화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를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국제 정치이지 결코 군비가 아니다. 중국과 미국, 양 쪽의 군비 확장과 경제 마찰을 해소할 제3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지, 결코 그 한 복판에 끼어드는 쪽이 아니다. 다행히 두 나라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나라도 마찬가지 처지일테니 이들 나라를 규합해서 동아시아를 G2의 분쟁이 중립화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은 PD저널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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