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새로운 금융의 시대를 알리는 것이다.(US downgrade heralds a new financial era)”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추고 향후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한 직후인 지난 8월 6일, 세계적인 채권회사 PIMCO 최고 경영자 모하메드 엘 에리언이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일까.미국 재무성 채권(국채)과 ‘무위험(risk free)’은 거의 같은 말일 정도로 세계 금융시스템은 미국 신용등급이 AAA라는 최고 등급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아래 움직여왔다.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은 다른 모든 금융자산 평가의 기준이 된다. 각 국가나 주요 금융회사들이 자산을 관리할 때 기준이 되는 것도 미국 국채다. 기본적으로 최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을 정해 놓고 그 다음으로 다른 국공채나 위험자산인 주식을 배분하면서 자산관리를 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미국 국채가 근간이 된다는 뜻이다. 또한 국채의 등급은 곧 미국 국채거래의 통화이자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주요 국가들은 외환보유고를 달러 자산으로 비축해 두고 있는데 , 그 자산이 바로 달러 표시 채권, 그 가운데 미국 재무성 채권인 것이다. 때문에 미국 국채 신용 등급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그렇지 않아도 약세에 빠진 달러 가치가 다시 한 번 근저에서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연 이은 주요 공기업들의 강등은 곧 미국 국공채에 대한 신용 등급의 강등을 뜻하고, 이는 다시 미국 국공채가 이론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국공채를 중심으로 하는 달러 자산이 역시 최고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S&P의 결정이 달러 가치와 달러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는 많은 분석들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세계 경제위기가 오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신용 등급 강등과 상관없이 미국 채권으로 돈이 몰렸다. ‘아직 대안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도 마찬가지다.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안이 없기 때문에 먼 미래에나 가능’하다는 진단이 대부분이다. 정말 그러할까.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달러의 위상은 심각한 타격을 받은 바 있다. 물밑에서만 논의 되던 기축통화체제 개편 논의가 주요 국가 정상들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2009년 3월 인민은행장이 직접 달러 대신 IMF 특별인출권(SDR)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해서 세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에서 올해 10월 개최될 G20정상회의에서 기축통화체제 개편 문제를 논의하자고 일찌감치 제안해 둔 상태다. 이뿐이 아니다. 국지적이긴 하지만 중국은 BRICs와 아시아 주변국가들을 상대로 무역결제 분야에 한정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 결제 규모를 빠른 속도로 늘려오고 있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과 위안화로 통화스왑을 체결하기도 했다. 물론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적어도 세 가지 조건, 무역결제 통화일 것, 각 국가의 외환 준비자산으로 기능할 것, 그리고 국제 금융상품거래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요건을 만족시키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시장이 말하는 자본시장 자유화 정도가 낮다. 그러나 이 역시 홍콩과 싱가폴을 일종의 금융특구로 삼아 자본시장 거래를 허용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세기 중반에 기축 통화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오랜 과정이 있었듯이 지금 역시 경제패권 교체의 과정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태평양 너머 미국의 지위가 확고할 것이라는 가정을 할 것인가. 에리언 말대로 새로운 금융의 시대가 계속 한 발씩 다가오고 있다..이 글은 ‘진보정치’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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