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대혼란이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는 2008년처럼 자산시장 거품이나 금융시스템 그 자체라기보다는 실물경제 침체와 정부 대응력 불신이 금융시장에 반영된 것인 만큼 무한정 붕괴는 당초 예상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각성이 덜한 것은 아니다. 양상이 다를 뿐이다. ‘급성 간염’과 ‘만성 간염’ 중 어느 것이 더 심각한가 하는 질문과 비교될까. 당초 문제가 실물에서 시작됐으니 이제 실물로 다시 돌아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금융패닉을 심하게 겪은 지금은 그 이전에 비해 실물경제 진단도 혼란의 크기만큼 많이 변했다. 더블딥 가능성이 50%를 넘으며 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루비니 교수의 진단이 주요 언론에 비중 있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도 달라진 진단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장이 지금까지는 더블딥 확률이 아주 낮은 것으로 평가했는데 지금은 그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몇 달 전에 15~20%였던 것이 지금은 35~45%까지 뛰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식변화를 잘 보여 주는 것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9일 회의를 갖고 다음과 같은 발표문을 냈다. “올 들어 지금까지 경제성장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각종 지표는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이 최근 몇 개월간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업률도 높아졌다. 가계의 소비지출은 둔화되고 있으며, 비(非)주거용 건축물에 대한 투자도 여전히 취약하고 주택시장도 계속 침체돼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장비·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논조는 7월에 경기가 둔화되고 있지만 일시적이어서 추가 국채 매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원래 급변동하는 금융시장과는 전혀 다른 실물시장 전망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1개월 만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FOMC는 어두운 경기전망 진단에 이어 적어도 향후 2년 동안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 역시 장하준 교수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적어도 2년 동안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라고 평가한 것을 수긍하게 만든다. 이 모든 상황은 금융시장이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도 완전히 바뀌어 버린 실물경제에 대한 인식과 전망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블딥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경기침체(recession)는 기술적으로 2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여야 한다. 아직 누구도 당장 하반기에 미국 경기가 마이너스로 진입할 것이라고 확언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자 그대로 기술적인 문제일 뿐 실제 경기는 예상을 넘는 하향세를 타고 있는 중이며 금융불안으로 인한 자금경색 경향이 이를 강화시킬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현재의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사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크게 할 역할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문제는 신뢰를 잃은 정부의 역할이다. 사태를 악화시킨 핵심 이슈는 재정위기라고 표현하지만 좀 더 다르게 보면 재정위기 자체보다는 ‘긴축’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문제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긴축’만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질구매력 향상에 도움이 될 서민의 복지지출을 긴축한다는 것이다. 다른 긴축도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비 지출 긴축이다. 올해 미 국방부 예산은 5천29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국방비 축소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았으며 공화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방안은 세입을 늘리는 것이다. 기업과 부유층을 상대로 한 증세다.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감세 일몰 연장에 미국 정부가 합의한 것이다.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 한국경제도 미국경제의 더블딥 현실화로 인해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올해 정부가 전망한 4.5% 성장은 고사하고 4% 성장률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미국경제가 1% 하락하면 한국경제는 약 0.44%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최근 각 기관들이 미국경제 성장률을 1%이상 낮게 수정하고 있으니 이는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효과가 있는 재정지출정책을 세우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