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탐지기는 과연 정확할까? 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진실을 말했더라도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대면 가슴이 두근두근 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문에 거짓말로 판정되면 그 억울함을 어찌 할까? 반대로 아예 후안무치하거나 또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자각도 없는 사람이라면 거짓말 탐지기를 무사통과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지금 한국 정치는 혁명 중이다. 민주당이 보편복지를 내세워 중도좌파의 드넓은 땅에 들어선 데 이어 한나라당 역시 중도우파, 합리적 보수 정당이라고 부를만 하게 되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산하 비전위원회가 내놓은 정책노선만 놓고 본다면 과연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복지수준, 고용률 60%, 대학등록금 부담 30% 축소, 공천 30% 여성 배정, 대북 지원 등이 포함됐으니 어찌 수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과 3년 전,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약속한 듯 똑같이 ‘뉴타운’ ‘특목고’ 유치를 현수막에 내걸었을 때를 되돌아보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이리도 잘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나는 두 당의 변화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100% 믿고 싶다. 이미 10년 전부터 복지를 외쳤던 진보정당까지 합쳐서 모든 정당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아름다운 ‘복지경쟁’을 벌일 것이다. 따가운 여름 볕에 초록이 지치듯 지난 15년간 죽음의 경쟁 속에서 허덕여온, 그래서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복지만한 생명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국민은 어떤 복지가 더 현실적인지만 판단하면 된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747’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전위원회도 여전히 2020년 국민소득 4만달러를 약속하고 있으며(그러므로 우리 경제는 매년 7% 성장을 해야 한다), ‘한국형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씨 쪽 역시 예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버린 바 없으니 마찬가지다.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한미 FTA를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정책기조의 재확인이다. 이렇게 성장을 해야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으니 자신들의 복지가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내심 ‘포퓰리즘과 재정적자’의 우리(프레임) 안에 복지라는 펄펄 뛰는 야생마를 가두는 그림까지 꿈꾸고 있을 것이다.거짓말 탐지기는 뭐라고 말할까? 지난 15년 간의 우리의 양극화 역사가 바로 그 거짓말 탐지기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한편으로 경제를 시장에 맡기면서(“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한탄) 다른 한편으로 복지를 늘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시장에서 벌어질대로 벌어진 양극화를 복지로 막는 건 불가능했고 소득 불평등 척도인 지니계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노동연구원 패널 자료를 이용하여 계산한 자산 지니계수는 무려 0.84(2008년)라는 극도의 불평등 상태를 보이고 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감세라는 시장 만능주의 정책기조를 버리지 않고 양극화를 막을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당연히 더 많은 복지 재원이 필요하고 재정적자는 현실이 된다. 한미 FTA는 이런 정책기조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초헌법적 장치이다. 한마디로 시장만능을 주장하면서 복지를 내거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경제의 거짓말탐지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영미권, 심지어 북유럽에서도 정확성이 증명됐다. 시장만능주의의 원조인 미국(2005년 기준 4위), 그리고 그 나라와 FTA를 맺은 멕시코(1위)와 캐나다(13위)가 모두 소득불평등의 최악의 국가들이고 빈약한 복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당이 내건 복지의 진위를 알려면 그들의 경제정책 기조를 보라. 한미 FTA는 가장 훌륭한 거짓말탐지기이다. 민주당은 최근 금융세이프가드 강화, 투자자 국가소송제도 폐기, 서비스 시장개방 포지티브 방식 전환, 역진불가조항(래칫) 폐지를 포함하여 한미 FTA 재재협상을 요구함으로써 거짓말 탐지기의 1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론자들이 핵심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던 항목들을 모두 수용한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철도 등 네트워크 산업 민영화, 금융규제완화를 통해 메가뱅크를 건설하려 했던 금융허브화, 제주도 영리법인 추진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민주당이 어떻게 처리할 것이지 주목하고 있다.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시장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시장을 무제한으로 키우다 보면 규제가 엄격한 복지는 뒤따라 가기가 벅찰 겁니다.
어느 수준을 얘기할 수는 없어도 시장의 실패는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도 얘기하고 있고…
결국 적절한 시장의 순기능만 빼고는 제한이 필요하겠죠.
그래야만 복지가 동반하여 나갈 수 있고, 양극화도 줄어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