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문장가 소동파가 유배를 살았던 역사의 땅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쯤 될 법한 중국 최남단 섬 하이난다오(海南島)가 지난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이 주도하는 두 개의 정상회의와 포럼이 열렸기 때문이다. 브릭스(BRICS) 정상회의와 보아오(博鰲)포럼이 그것이다. G7, G20과 브릭스 정상회의 2009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하여 올해로 3번째로 13~14일까지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를 먼저 살펴보자. 브릭스(BRICs)라는 용어는 2001년 미국 월가의 최대 금융세력인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 사장인 짐 오닐이 향후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브라질이 세계경제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 만들어낸 용어다. 스스로 만든 개념이 아닌 서방의 월가가 이름을 붙여준 이래 10년 만에 이들 국가들은 스스로를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세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를 참여시킴으로서 당초의 4국 브릭스(BRICs)가 아닌 5개국의 브릭스(BRICS,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칭하기 위해 소문자 s를 대문자 S로 바꾸어 부름)로 확대되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만모한 싱 인도 총리,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함께 새로 회원국이 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컵 주마 대통령까지 5개국 정상이 모두 참석한 3차 회의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 면적의 26%, 전 세계 인구의 42%,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18%, 세계 교역의 15%를 차지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를 3조 9300억 달러 보유하고 있다는 그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의 전망, 함께 번영을 누리다’라는 주제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는 “싼야 선언”을 채택하면서 최근의 세계질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하고도 독자적인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서방의 리비아 무력 개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선언은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정세에 대해 혼란을 우려”하지만 “우리 모두는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원칙에 동의”하며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리비아 사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못 박았던 것이다. 동시에 국제질서에 대한 평화적이고 공정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엔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방향에서 유엔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상회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 질서 변화에 대해서도 서방과 다른 목소리를 표방했다. 선언은 국제통화질서 개혁과 금융시스템 개혁에 대해서 “세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정의롭고 포괄적이면서 잘 관리되는 국제통화와 금융시스템이 구축돼야 하고 이런 시스템이 개도국과 신흥경제대국들을 이익을 대변할 것”을 요구했다. 달러체제에 대한 개혁의 요구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금융 위기는 오늘날의 국제 통화 금융의 결함과 부족함이 드러났다”며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통화 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옹호”한다는 선언을 한 것은 현재의 달러중심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 동시에 정상회의는 그간 달러체제를 뒷받침해왔던 중요한 두 개의 국제 금융기구인 세계은행과 IMF의 개혁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목소리를 냈다. 특히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 65년 동안 미국과 유럽이 독점해온 두 개의 금융기구 지배구조에 대한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과 유럽이 독식하고 있는 세계은행과 IMF의 지배구조는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것으로 현재의 요구에 맞게 바뀌어야” 하고 “세계은행과 IMF 운영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배제한 채 미국과 유럽의 자동순환 시스템이 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더불어 최근 신흥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자본 이동 통제에 대해서도 “국가 간 거대한 자본이동이 갖는 심각한 위협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무분별한 자본 자유화, 개방화에 대한 통제를 분명히 했다. 중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는 마침 14~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G20재무장관회의(G20정상회의는 올해 11월 프랑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와 비교되면서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서방 선진국이 중심이 된 G7의 확대판인 G20정상회의와 브릭스 정상회의가 어떤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국제질서에 영향을 미칠지 서방 언론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IMF나 G20정상회의 조차 최근 무분별한 자본유출입이 신흥국 금융시장에 주는 피해를 인정하고 있고 원자재시장에 대한 금융투기세력의 재 개입에 대한 우려를 외면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브릭스 정상회의의 강한 입장표명은 이런 경향을 더욱 굳히게 될 것이다. 후진타오가 제안한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과 한국 브릭스 정상회의가 G7, G20정상회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면 지난 14~16일 동안 같은 장소에서 ‘포용성 발전: 공통 의제와 새 도전’을 주제로 10번째 열렸던 보아오(博鰲)포럼은 서방세계의 다보스 포럼과 비교되기도 한다. 알려진 대로 매년 1월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공식명칭 세계경제포럼(WEF)은 서방 선진국 정상들과 기업가들이 주도하는 연례 세계경제 포럼으로서 흔히들 ‘부자 클럽’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서방 선진국들 위주의 포럼이다. 이와는 달리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며 2001년 이후 10년째 아시아지역의 경제 협력과 역내 지속 가능한 발전방안 제시를 목표로 현재 2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보아오 포럼은 지금까지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 중국의 부상을 배경으로 브릭스 정상회의와 함께 개최하는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아시아인들은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을 공유하고 있으며, 아시아 일체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아시아인들이 갈수록 단결하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아시아의 공동 발전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안보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존중과 선린우호 촉진 ▶발전 방식 전환과 전면적 발전 추구 ▶발전 기회 공유와 공동의 도전에 대한 응전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공동 안보 촉진 ▶호혜공영과 지역협력 심화라고 하는 아시아를 위한 5대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G2체제(미국과 중국의 양 강 체제)가 점차로 실체를 드러내는 가운데, 중국은 한편에서는 전 세계 비서방 대국들을 BRICS라는 틀로 규합해 나가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자신이 속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구상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이는 말 뿐이 아닌 실제적 경제력과 국력의 신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구별된다. 문제는 서방 선진국이 중심 된 OECD와 G20의 구성원이기도 하면서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의 일원이기도 하고 아직은 신흥국 틀 범주에 속해 있는 한국의 위치이다. 그리고 적어도 실물경제 관계만 놓고 보면 미국, 일본, EU의 모든 수출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수출비중을 중국(홍콩 포함)과 맺고 있는 한국 경제의 위치이다. 또한 세계 금융시장을 여전히 쥐락펴락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글로벌 자본 이동에 의해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신흥시장인 한국 금융시장의 처지이다. 한국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아시아의 일원이기 보다는 일본과 미국을 추종하며 태평양 국가로 편입되기를 원했고 서구의 경제모델을 닮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경제와 정치, 군사적으로 한미 동맹구조가 오히려 강화되면서 중국, 러시아 등 대륙 국가들과의 갈등관계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분명히 역사적 환경변화 추세와 맞지 않으며 향후 미래의 우리 국익과도 충돌할 개연성이 크다. 과연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가. 지난 주 하이난다오 섬에서 열린 두 개의 정상회의와 포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 반추해 물어보아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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