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중동의 민중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면서 정치권력이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이들 지역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이나 정보 전달을 받지 못한 탓에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이런 와중에 한국과 서방의 언론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무래도 유가의 움직임이 되고 있다. 깊은 이해(理解)에 앞서 당장의 이해(利害)를 따지는 것을 당연한 인간의 속성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유가의 변동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까닭에 이를 잘 따져보는 것이야 나무랄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은근히 민중들이 시위를 자제해야만 유가가 떨어질텐데라는 식은 곤란하다. 이기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자칫 모든 책임을 민중들에게 돌일 수 있기 때문이다.당연하게도 국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민중들이 아니다. 유가상승의 책임은 원유 가격 결정권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가격 결정시스템을 다 들여다 볼 수는 없겠으나 몇 가지만 확인해 보자. 유가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투기 수요’ 산유국 민중들의 시위가 없었을 때에도 국제 원유 가격이 급변하는 경험은 숱하게 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에 미국서부텍사스산 중질유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기록한 바도 있으며 2010년 하반기부터 유가 상승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이러한 급변동은 원유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석유시장이 ‘금융화’되었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이른바 수요-공급의 토대에서 벗어나 자산보유, 달러대체, 그리고 투기 등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아직 명백하게 정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은 석유시장의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1986년 OPEC에 의해 정책적으로 가격이 결정되던 시대가 끝나자, 원유 가격 결정은 이른바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1950년대까지 초국적 석유메이저 기업들이 완전히 전세계 원유가격을 통제했었고 1970~80년대에는 OPEC이 가격을 통제한 바 있다. 이들과 구분짓기 위해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을 ‘시장 시스템’이라 부르는데 실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가격 결정 시스템은 지극히 복잡하며, 따라서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TV에 나오는 원유가격 지표만을 보게 되면 이해관계자가 누군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원유는 ‘경매’로 판매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이제 110달러가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그 가격에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이런 인식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원유는 ‘아는 사람’끼리 일대일로 거래되며 장기 계약이 기본이다. 원유는 청과물 도매시장의 경매처럼 다수의 판매자와 다수의 구매자가 매일매일 가격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 시기는 일반적으로 최소 한달, 보통은 2년 이전에 이루어지며, 이 때 지표 유가를 참고로 하여 판매자(보통 산유국 국영기업)와 구매자(보통 소비국 사적기업)가 일대일로 가격 협상을 하게 된다. 지표 유가는 참고로 삼는 것이며 진짜 계약가격은 아니라는 것이다.진짜 계약 가격은 보통 원유의 질, 인도 방식, 구매량, 불량 발생 때의 처리 방법 등을 모두 고려하여 기준 가격에 프리미엄이나 디스카운트를 얹는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여기서 기준 가격은 원유의 품질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방식에서는 매일매일 유가가 급변한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수입가격 부담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정유회사들이 지표 유가가 올랐다고 바로바로 휘발유 가격을 올리는 것을 보고 필자는 독점기업의 횡포를 의심한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유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기초 재화로써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정부와 독점기업에 도입단가 공개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독과점 기업에 의한 국제 원유 가격 평가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앞서 언급한 원유의 기준 가격은 소수의 기업(oil pricing reporting agencies)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압도적인 전문성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기준 가격 평가를 독과점한다. 원유 거래시장이 워낙 불투명하고 참여자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제3의 가격 평가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기업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고 소수 기업이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는 것은 비판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원유의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기준 가격을 절대적으로 참고하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의 신용평가회사들이 최근 금융위기의 버블을 증폭시킨 것처럼 이들 석유 가격평가회사들도 유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유가는 이상의 실물 거래 가격이 아니다. 3대 지표 유종인 미국텍사스산중질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두바이유의 가격은 실제로는 선물, 옵션, 스왑 등으로 거래되는 (파생)금융상품의 가격을 지수화해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금융참가자들의 복잡한 이익구조가 개입되어 실물가격을 왜곡시키거나 혹은 교정하고 있다. 원유는 전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재화이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에너지 가격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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