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남세스럽지만 쓴다. 기가 막혀서다. 발기가 안 돼 대통령을 죽였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이 무슨 ‘도색 잡지’에 실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말끝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지’라는 신문의 인터넷 판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서다. 그 앞에선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차라리 우아할 정도다.“정통 뉴스사이트”를 자처하는 <중앙일보>인터넷 판은 “새로 드러난 10·26 비밀, 김재규의 ‘잃어버린 남성’” 이라는 제목을 시커멓게 머리로 내걸었다. 그 옆에는 고 김재규의 사진을 큼직하게 편집했다. 주 제목 아래엔 “50세에 치료불가 발기부전, 간경화 겹쳐 스트레스…‘사태 유발’”이라는 부제를 달았다(이 글을 쓴 뒤 다시 들어가니 어느새 편집을 바꿨다).‘정통 뉴스사이트’ 자처 중앙일보의 선정적 보도<중앙일보>의 ‘논설위원·정치 전문기자’가 쓴 이 기사는 “새로 드러난 10·26 비밀” 제하의 칼럼이다. 나는 지금 그 ‘논설위원 겸 정치전문기자’의 글을 놓고 시비 거는 게 아니다. 그 칼럼을 <중앙일보> 인터넷 판이 대대적으로 부각하고 나섰기 때문에 쓴다.인터넷판 머리에 오른 칼럼은 들머리에서 “해마다 가을이 되어 10·26이 찾아오면 나는 오래된 의문에 빠지곤 했다. 쿠데타 같은 치밀한 대책도 없이 김재규는 왜 그렇게 무모하고 우발적인 일을 저질렀을까. 그는 왜 자신의 죽음을 향해 코뿔소처럼 돌진했을까. 얼마 전 나는 김재규가 숨겨 놓았던 비밀을 찾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이어 김재규의 주치의를 만나 ‘증언’을 들었단다. 칼럼은 그 주치의가 “김 부장은 발기불능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었을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가 10·26 같은 과격한 행동을 우발적으로 저지른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고 언죽번죽 전했다.묻고 싶다. 과연 그것이 10·26의 비밀인가? 아무리 주관적 의견이 들어가는 게 칼럼이라고 하지만, <중앙일보>가 대대적으로 부각해 편집한 정치전문 기자의 칼럼은 지나치게 도색적이고 사실관계도 자의적이다.아무리 30년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평가는 사실에 근거해야 옳다. 아니, 30년이 흐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젊은 세대가 커나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김재규가 질펀한 술자리에서 박정희를 쏜 이유1979년 10월26일, 김재규는 결코 “무모하고 우발적”으로 박정희를 쏜 게 아니다. 물론,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도 없었다. 김재규는 부마항쟁에 나선 민주 시민들을 탱크로 깔아 버리겠다는 경호실장 차지철과 그를 두남둔 박정희를 죽여야 대규모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관례가 된 낯부끄러운 술자리에서 총을 쏜 이유다.그런데 느닷없이 발기부전이 10·26의 새로운 비밀이다? 이른바 의료인의 양식을 벗어난 그 주치의의 ‘증언’을 보아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 발기불능 진단을 받은 김재규가 왜 하필이면 2~3년 뒤에 총을 쏘았겠는가.조금만 성찰해도 알 수 있는 걸 도색잡지처럼 편집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이미 시작된 ‘박근혜 줄서기’라고 본다면, 나만의 과민반응일까? 그 보도를 가장 좋아할 사람은 박근혜일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그래서다. 남우세스럽지만 명문화해서 <중앙일보>에 묻는다. 발기부전으로 대통령을 쏘았단 말인가? 다시 고급지를 주창해온 홍석현 발행인에 묻는다. 아무리 한국 저널리즘이 추락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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